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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성남 - 느티나무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4/07/24 [10:2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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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이야기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면 더 찾게 되고 가치가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방해가 돼 다른 나무와 모여 살지 않고 홀로 상부가 퍼진 형태로 자라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다.

우리나라 나무 중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길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정자나무와 당산나무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때로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광장이 돼 왔다.
공동체의식이 강한 우리 조상들에게 느티나무는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무병장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린 나무이자 가가호호 소망과 소원을 풀어주는 나무였다. 이런 이유로 마을 느티나무는 신령이 깃들여 있다 해서 ‘신목(神木)’이라 불리기도 했다.
목재로서 느티나무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으로 약간 윤이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 데다 무늬도 아름답다. 게다가 건조할 때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해 ‘나무의 황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목재의 쓰임도 화려해 천마총을 비롯한 관재로 임금의 시신을 감싸고 영생의 길을 함께한 영광의
나무였고 절의 기둥이나 나무 불상도 대부분 느티나무라고 한다.
긴긴 세월을 이어 오면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기에 전설을 간직한 느티나무도 참 많다. 고려 말 문신 최자의 《보한집》에 따르면 들불이 번져 낮술에 취해 잠든 주인이 위험해지자 가까운 연못에 들락거리면서 몸에 물을 적셔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 주인을 구하다 죽은 개 이야기가 나온다. 개 덕분에 목숨을 구한 주인은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그 자리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 큰 느티나무가 됐다고 한다.
경남 의령엔 ‘현고수(懸鼓樹)’란 느티나무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장군이 북을 매달아 놓고 훈련을 시켰던 나무라고 한다.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 행궁 옆에도 긴 세월을 이겨온 사연 있는 느티나무가 있다.
1636년 12월 30일 청나라 임금 청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 바람이 크게 불고 날씨가 몹시 추웠다고 한다. 큰 눈까지 왔건만 광진, 삼전도, 헌능 세 길에 적병이 꽉 차서 들판에 한 조각 흰 빛도 찾아 볼수 없었고 군사들은 산 위에서 이를 바라보고 싸울 뜻이 없었다. 그때 행궁의 남쪽에 있는 느티나무에 까치가 와서 둥지를 틀어 인조와 성안에 있는 군민들이 이를 길한 조짐이라고 여겼으니 성안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비록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청군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성안 사람들에게 희망이 돼 준 느티나무는 여전히 행궁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남한산성이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돼 많은 성남인들도 기쁨을 같이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방문해 산성 길도 걸어보고 성곽의 가치도 알아본 후 행궁 옆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아보는 것도 기쁨을 나누는 방법일 것 같다.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