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생태도시 성남] 겨울철새 ‘기러기’

신(信)·예(禮)·절(節)·지(智)의 덕(德)을 갖춘 새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4/10/24 [12:22]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기러기는 장거리를 이동하는 새를 대표하며 우리에겐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겨울철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조왕 43년에 기러기 100여 마리가 왕궁으로 날아들었을 때 일관(日官)이 “먼 곳의 사람들이 찾아와 기탁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왕궁으로 날아든 기러기를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신(神)의 사자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가 신(信)·예(禮)·절(節)·지(智)의 덕(德)을 갖춘 새로 여겼다. 기러기는 추워지면 북녘에서 남으로 오고 더우면 다시 남녘에서 북으로 돌아가니 신의가 있고, 날 때 서로가 힘을 나누며 절차와 질서를 지키니 예의가 있으며, 한번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개가 있고, 밤이 되면 보초를 세우고 낮에는 갈대를 물어 화살을 피하니 지혜가 있어 신·예·절·지의 덕을 갖춘 새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조들은 기러기를 인생 최고의 중대사인 혼인 예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러기는 큰 기러기와 쇠기러기다. 천연기념물 제325호로 지정해 보호하는 멸종 위기의 희귀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반도로 날아오는 기러기의 특성 때문에 북쪽에서 투항해 오는 사람들을 기러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기러기가 사냥감이었으며, 시물로써 9월 제사에 올리는 제수이기도 했다. 갈대와 기러기, 즉 蘆雁(노안)이 老安(노안)과 발음이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뜻으로 민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여겨져 서신을 雁書(안서)라고도 한다.
기러기는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만km를 여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정한 형제처럼 줄을 지어 함께 날아다니므로, 남의 형제를 높여서 안행(雁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기러기는 V자로 대열을 이뤄 긴 여행을 하는데 꼭짓점에 있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주어 뒤에 따라오는 동료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71%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기러기의 긴 비행에서 리더 자리는 여러 기러기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데 리더 기러기가 지치면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맡아서 비행한다. 또한 기러기들은 여행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 힘든 리더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며 비행하던 도중 동료 기러기가 부상 등으로 대열에서 이탈하면 두 마리가 따
라 붙어 지켜 준다고 한다. 한 마리는 먹이를 찾는 일을 도와주고 다른 한 마리는 망을 봐주며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이탈된 동료가 설사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지라도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참 감동적인 여행이다.
우리는 여러 형태의 집단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인데 기러기의 여행이야기는 서열구조와 질서의 필요성 그리고 집단 내 리더십의 중요성도 느끼게 하지만 집단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공유정신이 그 집단을 건강하게 이끄는 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도시개발로 논밭을 끼고 있는 습지가 줄어들어 이젠 아쉽게도 기러기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성남시는 생태계의 건강한 복원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성남의 탄천하류 지역에서 기러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