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위기 시 신속한 신호 수단, 봉수 우리시에는 유서 깊은 백제시대 유적으로부터 조선시대 문화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수정구의 금토동, 상적동, 옛골 세 군데가 접해 있는 청계산 동쪽 기슭, 해발 약 170m 가량의 나지막한 구릉능선에 천림산 봉수가 있다. 조선전기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 ‘경기 광주부 소재의 봉수로서 천천산 봉화 이름으로 남쪽으로 용인 석성, 북쪽으로 경성 목멱에 응한다’고 한 기록으로 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설치돼 조선후기까지 봉화와 봉수를 올리던 봉수지로서 밤에는 횃불(봉)로, 낮에는 연기(수)로 신호를 했다. 천림산 봉수지는 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그동안 국내 최초로 3차례나 학술조사가 실시될 만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봉수로, 당시 국가 기반 통신방법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중앙으로 신속하게 신호하는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에는 5거로의 봉수가 있었는데 북방으로 3개 남방으로 2개가 있었다. 천림산 봉수는 부산(동래) 다대포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지봉수 제2로에 있으며 한양 목멱산(서울 남산)과 바로 연결되는 경기도 관내 마지막 봉수로서 일본의 동향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삼남의 정보가 합쳐지는 핵심 통신망 현재 성남에도 국가기간산업인 정보통신회사로 대표적인 KT(분당구 정자동)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있으며 추후 판교 테크노밸리에 정보통신 연구시설들이 입주할 예정이어서 성남은 한국 정보통신 발전사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천림산 동쪽으로 우리나라 교통의 중심인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것과 관련, 과거 부산부터 시작된 삼남의 정보가 합쳐지는 핵심 통신망이었던 천림산 봉수 인근에 경부고속도로가 위치하였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과거 분당에 위치했던 낙생역 역시 부산 동래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현재 성남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2개의 고속도로와 2개의 도시고속화도로가 있고 추후 몇 개의 고속도로 건설이 예정돼 있으며 한국의 고속도로를 건설·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 본사 역시 수정구 금토동에 위치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한국 도로교통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통신과 교통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성남 천림산 봉수는 원래 봉돈이 5개소이었으나 2개소는 후대의 농업경작으로 멸실되고 현재 3개만이 비교적 원형이 남아 있다. 봉수의 형태는 5개소의 연조가 동서 방향 일렬로 나란히 하면서, 북쪽으로 남산 봉수를 향하고 있는 남북 방호벽에 비해 남북이 짧은 동-서 장축의 장반타원형이며, 동·남·북 3면이 석축으로 돼 있는 반면 서쪽은 석축의 흔적이 없다. 경기도 기념물 제179호로 현재 복원작업 중 봉수지 전체규모는 둘레가 상단부 82.5m이며 하단부는 85m가량이다. 동서길이 33.8m 남북길이 12m로 그 중 북쪽 방호벽은 30m이고 동쪽 방호벽은 7.8m, 동남쪽은 8.2m로 총 길이 16m이며 남쪽 방호벽은 29.3m이며 내부 전체면적은 333㎡(100평) 정도다. 천림산 봉수에 근무했던 봉수군의 인원은 ‘중정남한지’(1846)에 봉군 25명 봉화보 75명의 기록으로 봐서 봉군 5명이 조를 이루어 5교대로 근무했고, 봉군보 75명은 근무를 하지 않는 대신 봉군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했으며 봉군 1인당 봉군보 3인씩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천림산 봉수지는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거쳐 2003년 경기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보존과 복원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천림산 봉수지가 원형 그대로 잘 복원, 보존돼 성남시의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역사의 장이 되길 기원해본다. 도움말_성남시 학예연구사 진영욱 729-3013 전미향 기자 mhchun@cans21.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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