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서울?” 대신 “실컷 놀렴”
유병희 | 분당구 이매동 사정이 좀 있어서 고등학생 조카를 데리고 있는데 지난 초겨울 아이들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제 방으로 쑥 들어간다. 이상하다 싶어 들어가 이유를 물었더니…. “집으로 오던 중에 1층 아줌마를 만나서 인사를 드렸는데 솔직히 속으로 좀 짜증날 것 같았어요. 시험 잘 봤냐고 물을까봐서요.” 아이가 기말고사를 잘 못 봤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험 얘기를 꺼낼 줄 알았던 우리 동 1층 아줌마가 뜻밖에도 “학교 재밌지? 친구들하고도 즐겁고?” 하며 다정하게 등을 토닥토닥 해주시 길래 갑자기 울컥했단다.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땅바닥만 보며 걷고 있는데 아줌마가 다시 또 “공부만 때가 있겠니?노는 것도 때가 있으니까 놀고 싶을 땐 실컷 놀아. 얘, 춥지? 아줌마가 호빵 사줄게, 가자” 하시더란다. 여기서 그냥 또 울컥했다는 아이. 어른들은 만나면 “점수 잘 나왔냐, 어느 대학 갈 거냐, ‘인 서울’ 할 수 있냐”고만 물어서 인사하기도 싫었는데 제 마음을 알아주는 아줌마가 고마웠다고 눈시울을 적시며 쿨럭인다. 같은 또래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인지라 한마디 한 것이겠지만 남의 아이 마음을 다독이며 격려해 준 1층 그이가 무척 고마웠다. 하긴 생각해보니 나도 아이들 키울 때 그랬다. 아들의 친구들을 길에서 만나면 우선은 시험과 성적 이야기부터 꺼냈으니…. 그리고 그게 나는 한 번이겠지만 아이들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들었을 터이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까.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입듯이 따스하고 다정하게 건넨 한마디에 힘과 용기, 위안을 얻기에 그동안 생각 없이 내뱉던 내 말들을 반성하게 됐다. 이제는 나도 조카의 친구들, 혹은 아파트 단지의 청소년들을 만나면 “시험 잘 봤니?”라고 묻기보다 “학교, 재밌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렴. 놀 때는 스트레스 다 버리고 실컷 놀아”라며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야겠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1/2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사람들-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18년 2월 7일(수)까지 보내주세요(주소·연락처 기재). 채택된 작품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보내실 곳 : <비전성남> 편집실 전화 : 031-729 -2076~8 이메일 : sn997@korea.kr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