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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인생 100단

유남규 | 분당구 서현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3/22 [15:1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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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0단
유남규 | 분당구 서현동
 
집 근처 대로변에 자주 가는 구둣방.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온종일 묵묵히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언제봐도 가족 같다.

며칠 전 일이다. 굽을 갈기 위해 갔는데 웬 아주머니가 찾아와 구두를 패대기치듯 아저씨 앞에 내던졌다.

“아저씨, 수선한 지 1주일도 안 돼서 망가지면 어떡해요? 에이, 짜증 나!”
“어이쿠, 죄송합니다. 곧 새로 해드릴게요.”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아버지뻘 되는 분한테 저렇게 독하게 퍼부을 게 뭐람. 옆에서 바라보는 내가 더 민망해서 혼났다.

“사장님, 맨날 구두 만지다 보면 혹시 발 꼬랑내 안 나세요? 저도 발 꼬랑내가 나는데, 하하하.”
마음이 상하셨을 것 같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농담을 걸었다.

“발 꼬랑내요? 허허허. 나지요. 그런데 그건 향기예요, 향기. 싫으면 일 못하지요.”

아저씨는 ‘부처님’ 같다. 그것마저 향기라고 하시다니. 아저씨는 자신이 만졌던 구두는 꼭 기억한다고 하는데기억을 도와주는 것 중 발 꼬랑내도 한몫 한다고 하셨다.
.
“어? 이거... 날카로운 것에 찍혀 찢어진 건데….”

아저씨는 좀 전에 다녀간 손님 구두를 만지며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수리를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손님이 구두를 다른 데서 찢어먹은 것이다.
 
그러나 아저씨는 묵묵히 그 찢긴 부분을 꿰매서 순식간에 새 구두처럼 만들어 놨다.

“아저씨, 아무리 화가 나도 매일 웃으며 사시는 비결이 뭐예요?”
“늘 웃기는 힘들죠. 즐거워서 웃나요? 즐겁기 위해서 웃지요.”

역시 나와 다른 분이다. 신고 들어올 때보다 신고 나갈 때 더 빛나는 구두를 보며 마냥 기분 좋아하는 구둣방 아저씨.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감마저 선물로 주시니 진정 인생 100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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