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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모란시장 할머니의 센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6/25 [12:2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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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할머니의 센스
 
김숙자 | 수정구 태평동
 
모란시장에 갔더니 길 저만치에 노점상 할머니 한 분이 외로이 앉아 계신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 할머니 물건을 좀 사 드려야 되겠다 싶어 다가갔다. 할머니는 이동식 부탄가스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끓는 물에 라면 봉지를 뜯어 퐁당 집어넣으시더니 곧바로 종이 박스에서 검은 비닐에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꺼낸다. 밥이다. 할머니는 밥을 펄펄 끓는 라면 냄비에 쏟아 붓는다. 그게 할머니의 라면 식사법인가 보다. 바로 옆에 놓인 손바닥만한 찬합. 마늘종과 함께 볶은 멸치, 그리고 깻잎 장아찌 두 종류가 전부인 밑반찬이 할머니 만찬(?)의 주요 메뉴였다. 그냥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애호박과 더덕이라도 살 요량으로 다가선 순간, 내 배꼽을 잡아 빼게 한 할머니의 센스 작렬. 한 바가지 정도의 됫박에 호두가 담겨 있고 그 위에 부채 크기만한 넓이로 라면 박스를 쭉 찢어 써 놓은 호두의 원산지 표시 글귀.
 
“북한산 호두, 통일 되면 국산!”

나는 식사 준비를 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그 글씨를 보고 한동안 서서 웃은 후 할머니의 ‘만찬장’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

“할머니, 오늘 많이 파셨어요?”

물건은 사지도 않는 인간이 뜬금없이 왜 묻냐는 눈빛으로 뜨악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 그래도 대답은 시원하게 하신다.

“아이고, 장사가 잘 안 돼야. 그 호박 살껴, 안 살껴?”

식사 중에도 구매 의사를 확실히 묻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도심 속 한여름 풍경이 투영됐다.

모두가 종종걸음으로 왔다가 황급히 떠나가는 시장, 찢어진 골판지 위에 놓인 한 무더기 흙 묻은 더덕의 주름살처럼 너도나도 다 같이 힘든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일하게 갖는 희망은,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다짐 아닌가. 그리고 곧 “통일 되면 국산”이 될 호두도 한줌 덥석 사 들고 일어섰다.

“할머니 많이 파세요” 하며 돌아서는데 “그려, 새댁도 감기 조심혀” 하는 다정한 인사. 그 “새댁”이라는 센스 넘치는 말에 또 꽂혔다. 앞으로 이 할머니 단골이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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