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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 있는 버스 타보셨나요?

33-1번, 성남 시내버스 창가에 피어 있는 꽃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7/16 [10:28]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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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창에 꽃을 꽂고 운행하는 심운섭 기사님     © 비전성남

 

수정구 산성동 차고지에서 출발해 분당구 구미동까지 운행하는 33-1번 버스를 타고 버스 안 풍경을 스케치해 봤다. 버스 운전 경력 16년 차에 접어든 심운섭 기사님이 운행하는 버스다.

 

버스가 정차하자 헤드셋을 착용한 기사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차 승객들에겐 “행복하세요~”라고 목소리 배웅을 하고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승차 승객에겐 마중 인사를 건넨다.

    
▲ 버스 창 미니 화병에 리시안서스가 활짝 피어 있다.     © 비전성남

 

버스 창문에 설치된 작은 꽃병엔 ‘리시안서스’가 환하게 피어 있다. ‘생화일까? 설마, 조화겠지’ 버스 창에 꽃병이 달려 있는 것도 생소한데 당연히 조화겠지 하며 살짝 만져본 꽃잎의 촉감에서 살아있음이 감지된다. 생화다. 

    

이매동에서 탑승한 한 어르신은 “은행동에서 이매동까지 약 9년 동안 33-1번 버스를 타고 청소일을 다니고 있는데 꽃이 피어있는 이 버스를 타게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며 “겨울철엔 버스 창가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서 번쩍번쩍한 게 아주 멋지다”고 귀띔도 해주신다.

 

꽃이 있는 버스를 처음 타본 승객인 듯 신기해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 창문마다 설치된 미니화병에 환하게 피어있는 꽃     © 비전성남

 

성남시내버스 33-1번 버스 심운섭 기사님은 버스 창문에 미니 화병을 설치한 후 꽃을 꽂고 운행하신다. 11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남다르게 꽃을 좋아한다거나 가족이나 친지가 화원을 운영해서 팔다가 남은 꽃을 가져다 꽂는 것도, 헐값에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산성동에서 구미동까지 왕복 2시간 20여 분, “행복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거듭되는 인사와 함께 130여 개 정거장을 거쳐 차고지에 도착한 심운섭 기사님과 꽃에 대해, 운행방침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운행을 마친 후 활짝 웃고 있는 심운섭 기사님     © 비전성남

 

“인사를 그리 많이 하는데 목 아프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더니 “10년도 넘게 해 온 일이라서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한다.

 

버스 창문에 꽂혀 있는 꽃에 대해선, “꽃을 보고 화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화가 났다가도 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버스를 운행하다 보면 피곤을 이끌고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더위에 짜증나는 사람도, 피곤에 지쳐 퇴근하는 승객도 있어요.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이 꽃을 보며 기분을 달랠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서 꽃을 꽂기 시작했어요”라며 “꽃을 보며 기분 좋아진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게 저의 운행목표입니다”라고 말한다.

    
▲ 산성동에 위치한 성남시내버스 차고지에서     © 비전성남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 꽃시장에 나가 꽃을 구입하고 기사님께 꽃의 이름을 알려 준다고 한다. 간혹 “기사님, 이 꽃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는 승객이 있어 기사님은 꽃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휴대한다. 이번 주 기사님이 휴대한 메모지엔 ‘리시안서스’라고 적혀있다.

    

겨울철엔 꽃이 얼어서 잠시 중단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왜 꽃이 없냐”며 서운해 하는 승객들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마스 전후로는 꽃 대신 버스 창가에 트리 장식을 설치했다. 겨울 방학 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려고 일부러 버스에 탑승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아내에게, 술 조금 덜 마시고 그 돈으로 꽃을 구입해서 승객들의 행복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기사님은 11년 동안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새벽시장에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마다치 않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성남 시내버스 33-1번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겐 “안전하고 친절하게 잘 모시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전했다.

 

취재 윤현자 기자 yoonh11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