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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두려우면서도 친숙한 존재, 요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8/22 [16:23]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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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요괴·괴이 데이터베이스(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 妖怪·怪異畫像データベース. www.nichibun.ac.jp/YoukaiGazouMenu/). 메인 화면 © 비전성남
 
▲경판 37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전우치전》 내지. 표제는 “젼운치젼”, 내제는 “뎐운치젼”이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명칭은 ‘전우치전’이다. © 비전성남
 
‘요괴(妖怪)’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드라마 ‘전설의 고향’ 단골손님이었던 무덤을 파는 구미호, 인간의 간백 개를 먹는 여우, 인간과 결혼해 백 일동안 정체를 숨기는 여우, 씨름은 좋아하지만 팥죽은 싫어한다는 외발 도깨비, 장화홍련과 같이 원통하게 죽은 각종 귀신들. 우리가 ‘요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요괴(妖怪)’는 인간에게 대체로 ‘무서운 것, 사악한 것, 피해야 할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요괴는 인간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인간과 매우 친숙한 존재다. 요괴는 전통시대부터 그 실존 여부를 떠나 끊임없이 언급돼 왔다. 《한국구비문학대계》와 같은 구비 설화집,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 등의 문헌 설화집,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 고전소설 등에 각종 요괴에 대한 서술이 다양하게 전한다.
 
특히 고전소설에는 다채로운 요괴가 등장한다. 최근 고전소설 34종에 나타나는 요괴를 고찰한 연구에 따르면, 약 27종 가량의 요괴가 등장한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여우, 용과 뱀, 돼지와 원숭이, 나무귀신 등이 그것이다.
 
천상 세계에 머물면서 지상의 인간을 조종하는 여우(《삼한습유》), 여주인공에게 교화돼 승천한 여우(《옥루몽》), 천상에서부터 짝사랑한 남주인공을 따라 지상에 환생한 여우(《구래공정충직절기》, 《임씨삼대록》), 사람을 홀리는 환약을 만드는 여우(《쌍성봉효록》), 인간 여자를 겁탈해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는 뱀(《원회록》), 인간이 되고 싶어 인간의 정기를 흡입하는 물귀신(《범문정충절언행록》)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요괴에 대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 설정과 흥미로움으로 작품을 이끌어간다.
 
현재 한국은 요괴라는 원천소스를 학문의 영역과 산업의 영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중국요괴사전》이나 《일본요괴대사전》, 《일본괴이요괴대사전》 등이 끊임없이 개정·발간되고 있는데, 한국엔 이렇다 할 요괴 사전이 없다. 단순 모방이 아닌 한국만의 특색이 담긴 요괴 사전의 편찬이 시급하다. 더불어 요괴 삽화집이나 그림집을 발간해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고전문학 속 요괴는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각색 및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완구 등의 캐릭터 산업이나 지형도 및 DB 구축, 교육용 콘텐츠 및 에듀케이션 어플 개발, 게임 산업, 동화책이나 만화책 등으로의 출판 매체 변용,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으로의 영상 매체 변용 등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전우치’(최동훈 감독, 영화사 집)가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을 거둔 것을 떠올려 보자. 현대에 봉인 해제된 전우치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와 맞서 싸운다는 기본 스토리는 원작인 고전소설 《전우치전》과 다르다.
 
그러나 악동이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사악하기 그지없는 요괴를 선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전우치와 요괴의 대결을 극대화한 것이야말로 흥행요소였다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전소설은 요괴와 주인공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그 해결 양상이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접해보지 못한 스펙터클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따라서 고전문학의 요괴를 문화콘텐츠화해 확대 생산하는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어온 요괴에 대한 고찰은 인간의 경계심과 공포,욕망 등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연구이며, 문화현상에 대한 탐구이다.
 
이제 더 이상 요괴에 대한 관심을 미신이나 저급한 신령에 대한 연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요괴에 투영된 한국인의 요괴관, 더 나아가서는 미의식까지 읽어내는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