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나도 봄의 전령사예요’

도장나무로 불리는, 알고 보면 귀한 나무 회양목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2/21 [17:30]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노랗게 핀 복수초가 남한산성에서 발견되고 긴 겨울 동안 잎사귀를 땅에 바짝 붙여서 자란 냉이와 꽃다지가 봄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다. 3월 중순이 되면 산수유와 생강나무도 앞 다퉈 봄을 알리는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런데 많이 알려진 봄 야생화와 나무들에 비해 눈에 띄지 않지만 개나리보다 먼저 활짝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바로 보도와 화단의 경계 지점에서 울타리 역할을 하는 회양목이다.
 
회양목의 꽃은 잎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연한 노란색이다. 꽃잎이 없이 노란색의 암술과 수술로 이뤄졌고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3월에 꽃이 핀 회양목 옆을 지나가면 잠깐 발길을 멈출정도로 꽃이 은은하면서도 향기롭다.

회양목(BUXUS Korea Nakal)은 학명에서 알수 있듯이 한국이 원산지다. 사계절 내내 푸르고 앙증맞은 잎을 가진 회양목은 공원 잔디밭 둘레와 화단의 낮은 울타리로 쓰여 흔히 접할 수 있지만 ‘도장나무’라고도 불리는, 알고 보면 귀한 나무다.
 
목판인쇄의 단점을 보완하며 등장한 활자는 처음에 나무로 만들었다. 단단하고 오래도록 보관 가능한 나무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활자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나무 중에 가장 좋은 나무가 회양목이었다.

나무의 질이 치밀하고 고우며 단단한 회양목이 나무 활자의 재료로 쓰였다는 기록은 많다. 특히 조선 정조 때 회양목으로 32만자의 나무활자를 만들어 ‘생생자(生生字)’라고 했다. 조선 3대왕 태종은 5품 이상 관리의 호패를 만들 때 회양목을 사용했다. 회양목은 정말 느리게 자라는 나무여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심었다는 용주사의 회양목은 200년 넘게 자랐는데도 줄기의 둘레가 어른 손으로 두 뼘 정도인 53㎝밖에 안된다. 필요한 곳은 많은데 이렇게 느리게 자라니 귀한 나무로 꼽힌 것이다.
 
옛말에 ‘회양목이 자라는 곳에서는 물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회양목은 석회질이 많은 땅에서 잘 자라는데 석회질 성분이 강한 물을 마시면 소화가 안 되고 피부가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강원도, 충청북도,황해도 등의 석회암지대에서 잘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 강원도 ‘회양’이란 지역이 회양목이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회양목은 추운 겨울에도 작고 두툼한 푸른 잎을 간직한다. 겨울이 되면 자동차에 부동액을 넣듯이 세포 내 액체 농도를 진하게 만들어 잎이 어는 것을 방지하는 덕분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을 피워도 강한 꽃향기로 발길을 사로잡는 회양목같이 연초의 계획을 조용히 실천해나가 봄을 맞으며 작은 결실을 하나씩 만들면 좋을 듯하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