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나는 백범의 동지, 독립군의 딸입니다

한도원 독립지사의 딸 한순옥 여사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3/22 [12:11]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한순옥 세손에게 주노라. 너희 집이 상해에 있을 때 너희 집에 권총을 가지고 갔었다. 총을 가지고 놀다가 오발이 됐을 때 너는 아직 배 속에 있었다. 하늘이 준 행운 덕에 아무 일도 없었다. 이제 너는 17세고 옛일을 떠올려 보니 소름이 돋는구나.’
 
백범의 지시로 일제 경찰에서 밀정으로 일한 한도원 독립지사. 1930년 중국 상하이(上海) 한 지사의 집에서 식사를 하려던 백범은 품에 지니고 있던 총이 오발돼 총성이 울리자 일제 경찰을 피해 황급히 떠났다.

당시 한도원의 아내(홍성실·1908~1958)는 임신중이었다. 이후 백범은 혹시나 복중의 아기가 총소리에 놀라 잘못됐을까 봐 동포들에게 아기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했는데, 그 아기가 바로 한순옥 여사다.

1946년 해방된 후 소녀 한순옥은 엄마와 함께 경교장을 찾았고, 백범은 너무나 반가워하며 글귀를 써 줬다.

“세손이 친손자와 같은 말이라고 하는데, 저를 정말 아껴주셨어요. 학비도 보태 주시고, 제가 노래를 잘하니 정훈모 서울대 음대 교수님을 소개해 주셔서 무료로 음악도 배우게 해 주셨어요.” 한순옥 여사(89·야탑1동)는 늘 독립운동 비화를들으며 성장했다. 독립운동의 숨은 공로자인 그의 어머니 홍성실 여사는 삯바느질로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백범의 자금관리도 맡았고, 이봉창 의사 의거 때에는 한 여사를 태운 유모차에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실어 전달하기도 했다.

한 여사의 딸, 장숙 씨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재조명되고 있는 요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한 여성들의 노력과 공로도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을 살았지요.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게 다반사였어요. 일제 경찰이 수시로 집을 뒤졌구요. 김구 할아버지는 식사 때면 동포들 집에 가서 ‘나 왔다’ 하고 들어오시고, 가실 땐 언제 가셨는지 모르게 나가셨대요. 잠도 아무 데나 동포들 집에 들어가서 주무셨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백범일지에도 “식사는 직업을 가진 동포 집에서 걸식하니 거지는 상등 거지다”라고 표현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다. 그래도 한 여사는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기에, 아버지에게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생으로 인한 원망은 없다고 한다.

“저는 지금도 애국가를 부르면 ‘대한민국 만세!’가 저절로 나와요.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에요.” 김구 할아버지 생각만 하면 여전히 눈물이 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며 눈물을 닦는 한 여사.

“이 글귀는 저희 집의 보물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이사도 많이 다녔는데 망가지지 않은 것도 감사하구요. 김구 할아버지를 만나면 인사드리고 싶어요. 할아버지, 저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라를 위해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