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10시가 되면 비가 그칠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으며,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성남시지회(지회장 유연천) 회원 32명이 현충탑(수정구 태평동 소재)에 모였다.
현충탑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성남시가 1974년 건립했다. 이곳에서 성남시는 매년 신년참배와 현충일 추모행사를 하고 있으며, 전몰군경유족회 성남지회를 비롯한 성남시 9개 보훈단체 회원들이 매월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좀 넘으니 비가 그치고, 회원들은 단체 활동조끼를 착용하고 현충탑 앞에 정렬했다. 모든 회원들이 헌화하고 묵념을 올린 후 유연천 회장은 “궂은 날씨에도 빠짐없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 불편한 몸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했다.
봄기운을 받은 잡초들이 현충탑 경내 잔디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전몰군경유족회 성남시지회 회원들은 매월 현충탑 참배와 주변정화활동을 한다. 현충일을 앞두고 현충탑 돌봄(지킴이)행사로 전사하신 이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현충시설을 보호하고자 잡초제거와 오물청소 등 정화작업에 나섰다. 풀 한 포기 한 포기, 호미로 캐고 뽑으며 뿌리 깊은 풀과는 씨름도 한다.
유연천(68·분당동) 지회장은 지난해 5월 지회장으로 임명 받았다. 6.25로 유복자인 유 지회장은 아버지 증명사진 한 장 본 것이 아버지에 대해 전부라고 한다. “성장과정에서 할머니 품에서 자란 사람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큰아버지, 삼촌한테서 자라거나 고아로 자란 이들도 있어요. 평균연령 70이 넘었지만 모두 아버지, 아들을 생각하며 오늘처럼 행사에 스스로 참여합니다. 모두 아픈 사연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형제자매처럼 서로 도우며 지냅니다. 둘째 주 토요일에는 건강을 위해 남한산성 둘레길, 중앙공원 등을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한다.” 김응초(78)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11살 때 징용으로 끌려가신 아버지가 연천지구전투에서 돌아가셨다. 지금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계신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신발과 공책(노트)을 사주시던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6.25때 전사했다는 이화순(68·구미동) 씨는 남편(68·안준식)을 대신해서 나왔다며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해 남은 자식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현충탑 시설을 보호하고자 한다”며 5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 돌봄 행사’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위례동에 산다는 김경순(80) 씨는 “다리가 불편해도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왔다. 군대 간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달랠 길이 없었다. 22살 아들을 보낸 지 30년이 넘었지만 가슴 아픈 것은 그때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속상해서 바깥활동을 안하다가 유족회에서 활동하게 됐다. 슬픔도 삭이고, 세월이 흐르니 나도 나이 들고, 오늘처럼 나오면 웃게 된다”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털어놨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성남시지회는 1963년 경기지회 산하 성남분회로 시작한 후 1993년 구 연합지회로, 1995년 1월 성남지회로 설립되면서 현재 회원이 1천 명이 넘는다. 매년 국립대전현충원과 서울국립묘지 정화활동에도 참여한다. 4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 청소를 다녀왔고, 현충일을 앞둔 5월 3일 30여 명 회원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정화활동을 위해 성남을 출발한다. 유연천 지회장은 “많은 사연을 가슴에 담고 있는 전몰군경유족회 회원들과 서로 도우면서 이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1천 명이 넘는 회원들과 함께 어려운 민원을 해결해 나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남편과 부모, 자식을 가슴에 묻고, 그들을 아프게 기억하는 유가족의 슬픔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우 차원의 ‘호국보훈의 도시 성남’을 기대해본다. 취재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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