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장서각 산책] 조극선이 일기를 쓴 까닭은?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5/24 [11:26]

▲ 조극선의 『인재일록』과 『야곡일록』     ©비전성남

 

일기란 한 개인이 매일의 일과 경험을 개인적인 느낌이나 사고에 따라 자유롭게 기록하는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기록이다. 자신의 솔직하고 내밀한 기록이기에 많은 경우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것을 꺼리고, 행여나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한다.

 

그런데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일기는 다소 색다르다. 조극선은 그의 일기 『인재일록(忍齋日錄)』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금 내가 기록한 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지의 귀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곁에서 질책하고 있다. 그러니 우러르면 하늘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으며, 돌아보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한 가지 행동과 한 가지 일이라도 모두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차하게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남들은 모른다.”고 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로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러니 내가 이를 책머리에 서술하여 오늘부터 삶의 태도를 바꾸는 바탕으로 삼고, 종신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공부의 과정에 더욱 힘쓰고자 한다.

 

조극선은 일기를 자신만의 내밀한 기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기를 누군가 보고 꾸짖을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극선이 일기를 꾸며서 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써도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로 잡고자 했다. 설령 남들은 모를지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고자 했으며, 이것을 평생의 공부의 바탕으로 삼았다.

 

조극선은 17세기 호서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관료다. 그는 학문으로 천거돼 관직에 나갔으며 인재들에게 도를 가르치는 사유(師儒)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학문의 도를 닦는 바탕이 된 것이 바로 일기를 통한 성찰이었다.

 

학문의 도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뜻을 정하고 매일 스스로 점검함에 있다······. 오늘로 어제를 비교하고 다음 달로 이전 달을 비교하여, 날마다 모르던 것을 알고 달마다 잘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하루하루가 새로워지고 달마다 진보하여 1년이면 1년 동안의 공부가 쌓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옛 버릇을 벗어나 천리(天理)가 순수해질 것이니, 하루 종일 말해도 입에 허물이 없고, 일 년 내내 일해도 행동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어찌 성현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지 않고, 가장 높은 경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일록(日錄)을 만든 이유다.

 

이것이 조극선이 일기를 쓴 까닭이었다.

 

조극선의 일기는 매일의 일상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기록했으며, 17세기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일기자료로 손꼽힌다. 그런데 조극선이 일부러 쓰지 않고 누락한 내용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남에게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푼 사실이다.

 

반면 자신이 남에게 받은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조극선은 또 다른 그의 일기 『야곡일록(冶谷日錄)』의 범례를 통해 “무릇 남이 나에게 덕을 베푼 것은 내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심지어 음식과 같은 종류일지라도 반드시 상세히 기록한다. 내가 남에게 덕을 베풀었다면 반드시 잊어야 한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역사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기록의 불균형은 매우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400년이 지난 지금, 조극선의 일기가 단지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울림을 줄 수 있는 고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이 조극선의 성찰적 삶이 일기를 통해 실천됐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