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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양복 만들기 47년, 신흥동 세창양복점

세창라사, 세창테일러, 세창양복점으로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9/29 [09:3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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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블재킷이 유행하던 때 만들어진 옷. 더블재킷은 올해 다시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세창양복점의 세월이 흘렀다.     ©비전성남

 

▲ 40년 전, 세창라사 때 맞춰진 양복임을 설명하는 이준호 사장     ©비전성남

 

하얀색 도포에는 흰 버선이 어울린다. 그렇게 흰 버선을 신던 습관이 배어서일까. 검은 양복에도, 감색 양복에도 흰 양말만을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흰색 면양말이 하얗게 더 하얗게 보이도록 박박 문지르고 삶아서 신던 때.

 

이준호(70) 세창양복점 사장은 “1990년대 초 성남양복협회 회원들과 성호시장, 종합시장 그 주변을 돌며 옷 바르게 입기 캠페인과 양복 바르게 입는 법을 정리한 책과 전단을 나눠 주기도 했다”며 그때를 기억했다.

 

“검은색 바지를 입고 흰 양말을 신으면 안 돼요.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는 것도 맞지 않죠.”

 

▲ 세창양복점 내부     ©비전성남

 

▲ 세창양복점 내부     ©비전성남

 

▲ 과거 양복협회 책자에 실린 양복 바르게 입기 안내문     ©비전성남

 

이준호 사장은 일 년 내내 양복을 입고 지낸다. 양복 만드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차림이라 여긴다.

 

요즘은 손님이 많지 않다. 찾아오는 손님은 긴 세월 자리를 지킨 세창양복점만큼 나이든 손님이나 단골이 대부분이다. 1970년대에는 성남시에 200여 개 양복점이 있었다. 특히 상대원 지역엔 건물마다 양복점이 있을 정도였다.

 

맞춤 양복은 아무때나 입는 옷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앞둔 시점에선 필수로 맞춰야 하는 옷이었으며 결혼 예복을 마련하기 위해 빠트리지 않고 방문해야 할 곳이 양복점이었다. 살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맞춰 입는 옷이라 옷을 만드는 데 대한 자부심도 컸다.

 

결혼식이 많은 봄, 가을에는 야간작업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 예복은 웨딩업체를 통해서 준비하고, 맞춰 입는 옷의 편안함을 기억하는 혼주들만 옷을 맞추러 온다.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 사장의 목엔 목도리처럼 줄자가 걸려 있다. 양복을 만들기 위한 완벽한 준비 자세다. 매장 안에는 이 사장이 만든 양복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30년 된 양복, 무려 40년이나 됐다는 코트도 걸려 있다. 옷의 앞섶을 들춰보니 세창라사, 세창테일러, 세창양복점이라고 써있다. 시대에 따른 상표의 변화가 신기했다.

 

어떤 옷은 세창라사 때 맞춰 놓고 찾아가지 않은 옷이고 어떤 옷은 30년 전, 세창테일러 때 친척에게 해줬던 옷이다.

 

오래된 옷과 최근에 맞춰 논 양복이 함께 걸려 있으니 유행의 변화가 보였다. 양복 상의를 여미는 단추가 더블인 것과 싱글인 것으로 나뉘어 있고 바지통의 넓이도 달랐다.

 

요즘 패션 트렌드가 몸에 딱 붙는 스타일에 짧은 바지라면 과거엔 넓은 바지통에 구두의 뒷굽을 살짝 덮는 길이, 의자에 앉았을 때 흰색 면양말이 하얗게 보일 정도의 길이를 선호했다.

 

이 사장은 15세에 봉제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양복공장에 취직해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만들기가 비교적 쉬운 바지부터 조끼, 상의의 순서로 일을 배웠다.

 

지금은 양복 맞춤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없고, 옷을 맞춰 입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사람마다 몸의 형태가 다른데 사람들은 몸에 옷을 맞춰 입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춰 입는다. 우리는 그럼에 익숙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창양복점 앞 배너에 쓰인 비스포크가 눈길을 끈다. 기성복을 사 입는 데 익숙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하나가 떠오른다. 내 것이라면 내 몸에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 세창양복점 외관     ©비전성남

 

▲ 시대에 따라 바뀐 상표     ©비전성남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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