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시장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창곡중학교를 다녔어요. 2번, 5번 버스를 탔는데 학교에 가려면 빠이롯드 공장 근처 고개를 넘어가야 했죠. 그런데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개를 넘지 못했어요. 고개 아래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가야했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어요. 지금은 구종점이라고 하는 곳이 그때 버스 종점이었어요. 거기서 내려 제1공단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했죠. 공단이 공원이 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니 좋습니다.” 수정도서관 박수곤 주사의 기억 속 빠이롯트다. 성남시 수정도서관에서 <빠이롯드 예술로 기억하기>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도서관 인근 제1공단 지역에 있던 한국빠이롯드 만년필 공장에 대한 기록이다.
수정도서관 주변 마을은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 많다. 이에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지역사회 기록을 공유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마을의 거점 공간인 도서관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수정도서관 김선영 사서에게 관람객의 반응을 들어보았다. “전시회를 돌아보고 두꺼운 공장기록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겨보는 분들이 계셨어요. 원래 아래에만 놓여 있었는데 잘 보실 수 있게 일부러 위에 올려 뒀어요.”
지역 주민들에게 빠이롯드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공장의 의미를 넘어 지난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던 제1공단 자리에 대한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공장에서 일했던 근로자의 구술내용도 들어 있다. 구술자: 세상에 그러면 우리가 전설로 남네? 조사자: 예, 역사에 한 장면으로 구술자: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여기가 검사라인. 여기가 과일 같은 거 있으면 중간 중간에 까먹었던 데야. 진짜 우리가 여기 쫙 앉아가지고 일 했었는데. “재미는 있었어. 그래도 우리는 거기 다녔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몇 십 년을, 거기를 몇 십 년을 뛰어다니면서 다녔는데.”
전시장 내 공장의 규율이 드러나는 사인물 코너에서는 1초당, 1분당 드는 비용까지 적어두고 일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장 곳곳의 모습이 벽면에 천장에 붙어 있었다. 많은 사진이 있지만 사진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다. 그러나 사진을 보면 사람이 느껴진다. 근로자의 흔적이 기계에, 공장 시설물에 남아 있다.
서울시 인구분산정책으로 이주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한 공단 조성, 공단 내 공장의 이주로 남은 빈터, 그리고 이제 시민들을 위한 장소로 돌아오는 곳. 빠이롯드가 있던 제1공단 자리에는 이제 근린공원, 시립박물관, 법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제1공단 지역은 성남의 역사로 남는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수정도서관 2층 로비에서 열린다.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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