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로드(The Road)』,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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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이후 지구는 지옥으로 변했다. 모든 게 파괴된 세상은 잿빛으로 뒤덮였고, 대량멸종으로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윌리엄 포크너의 뒤를 잇는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더 로드(The Road)』는 왜 이런 끔찍한 세상이 도래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작가의 의도가 무언지 분명 안다. 지구가 멸망해 문명과 인간성이 무너져버린다면, 그때 가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깨우친들 무슨 소용이랴!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너절한 생필품이 담긴 대형카트를 밀며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무작정 남쪽 바다로 향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들은 ‘불을 운반하는 좋은 사람들’이라 칭한다. 불은 무엇이며, 또 스스로를 선하다 칭하는 자화자찬은 무엇인가?
불은 악이 횡행하는 세상에서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인간의 선한 의지이며 동시에 희망이다. 죽지 않기 위해 주린 배를 채워야만 하는 부자는 이미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처럼 인육을 뜯어먹을 수는없다. 인간성이 괴멸된 괴물 같은 세상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교육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총 쏘는 법도 가르친다. 만약 식인종에게 잡힐 경우 스스로를 쏘아 인간의 존엄을 지키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 가운데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다리에 총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헌신한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아들에게 이제 혼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너의 기도를 통해 만날 거라고 위로한다.
『더 로드』는 시작부터 이기적인 인간들이 결국 자신들이 이룬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생존하기 위해 끔찍한 괴물이 되거나, 아니면 그 괴물들의 밥이 될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끝없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온갖 사악함으로 가득한 심령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희미한 인간 양심에 대한 기대말이다.
『더 로드』는 시종일관 죽음의 공포로 일관한다. 그것도 황폐한 지옥에서 산 채로 인육이 되는 처참한두려움이다. 하지만 주인공 부자는 드러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수록 더욱더 강렬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일찍이 작가는 “삶과 죽음을 논하지 않는 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모든 예술과 문학의 근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 아니던가!
하지만 작가는 이런 투철한 의지로도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여정을 마치지 못한 채 먼저 눈을 감는다. 아들의 운명을 신의 손에 맡긴 채로. 아무리 살기 위해 발버둥쳐도 결국 인간의 운명은 신의 손에 있다는 깨우침이며 선언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아무리 세상이 엉망진창이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듯 슬그머니 희망의 손길을 내민다. 홀로 남은 소년은 여행 끝자락에서 스스로를 ‘좋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하는 한 중년남자를 만난다. 자신과, 또 죽은 아버지와 같은 과인 사람! 남자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고, 아들을 품안에 거둔다. 시종일관 절망적 디스토피아로 일관하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거두면 안 된다는 『더 로드』의 진리를 깨우치자 갑자기 알렉산드르푸시킨의 말이 떠올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성남시민 독서릴레이 9월 주자는 삶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현재를 말하는 ‘김의경’ 소설가에게 부탁합니다. 현재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길을 기대합니다.
기고 : 영화감독 이무영(동서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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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은수미 성남시장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② 노희지 보육교사 『언어의 온도』
→ ③ 일하는학교 『배를 엮다』
→ ④ 이성실 사회복지사 『당신이 옳다』
→ ⑤ 그림책NORi 이지은 대표 『나의 엄마』, 『어린이』
→ ⑥ 공동육아 어린이집 ‘세발까마귀’ 안성일 선생님『풀들의 전략』
→⑦ 구지현 만화가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 ⑧ 이무영 영화감독 『더 로드(The Road)』
→ ⑨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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