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없는 시골집
이병도 | 중원구 은행동 “할머니, 저희 이제 들어가 볼게요”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려고?” “차 있어요. 할머니” “차가 있다고? 그래도 멀지 않겠누?” “성남이라 금방 가요. 할머니” “그래도 아쉬워서 어떡하누. 자고 가” “내일 출근해야 해요. 할머니” 시골집에 내려가면 으레 하던 실랑이가 문득 기억난다. 벌초를 할 때도, 제사를 지낼 때도, 명절에 내려갈때도 할머니는 늘 아쉬워하며 하룻밤 더 자고 가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를 보러 가서 물장구치고 수박 먹고 놀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이상하게 할머니보다 중요한 사람은 늘어만 갔고 바쁘다는 핑계도 점점 쉬워졌다. 이제 할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신다. 아무도 몰래 쥐어 주시던 요구르트 한 병을 이제는 당신이 먹고 싶다고 투정 부리신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할머니를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 하룻밤 더 자고 갈걸,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달래 된장찌개에 밥한 그릇 먹고 집에 갈걸. 왜 나는 바보같이 후회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찾아뵀다. 이중으로 잠겨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할머니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누워 요구르트를 마시고 계셨다.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틈틈이 물으시는 할머니께, 누나는 차근차근 손녀 손자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때마다 묵묵히 할머니를 바라만 봤다. 가슴은 먹먹한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면회시간이 끝나 갈 때쯤 간신히 입 밖으로 꺼낸 말은 “할머니, 저희 이제 가볼게요”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말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알아보지 못하는 손자에게 또 늦은 시간에 어디 가냐고, 밥은 먹고 가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할머니가 없는 시골집에서 나는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 할지, 일찍 돌아와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서질 않는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1/2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사람들 - 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19년 9월 7일(토)까지 보내주세요(주소·연락처 기재). 채택된 작품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보내실 곳 : <비전성남> 편집실 전화 : 031-729-2076~8 이메일 : sn997@korea.kr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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