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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백일 동안 꽃이 피는 배롱나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9/24 [17:23]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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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까지 백일 동안 연이어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다. 꽃봉오리가 벌어지면 화려한 프릴모양으로 주름 잡힌 꽃잎 6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일 동안 꽃을 피우는 한해살이풀인 백일홍처럼 백일 동안 꽃을 피우기에 백일홍나무로 불리다가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꽃 하나하나가 백일을 가는것이 아니다. 작은 꽃들이 연속해 오랜 기간 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번 핀 꽃이 지지 않고 백일을 견딘다고 봤다.

중간키 나무이면서 줄기가 구부정하고 비뚤비뚤한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는 특징 말고도 껍질이 유별나게 생겨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흰 얼룩무늬가 있고 반질반질한데 얼룩이진 줄기 가운데 하얀 무늬를 긁으면 나무 전체가 살짝 움직인다. 배롱나무의 그 모습을 보고 간지럼 타는 모습으로 여겨 ‘간지럼나무’라고 불렀다. 일본에서는 껍질이 미끄러워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진다고 해 ‘원숭이 미끄럼나무’라고도 불렀다.

배롱나무는 옛날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나무다. 안동 병산서원에 가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서원 앞에 심어진 배롱나무다. 껍질 없는 모습을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한결 같다고 본 선비들이 그 한결같음을 닮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나라 현종도 배롱나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중국 관청 정원에 배롱나무를 심게 했고 주요 관청 중 하나인 중서성을 연한 자주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라는 의미를 품은 ‘자미성’이라고 이름을 고쳐 부르기도 했다.

배롱나무는 특이한 줄기 때문에 꺼려지기도 했다. 제주도에선 껍질 없는 모습이 뼈만 남은 것 같아 배롱나무를 불길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 배롱나무의 반들반들한 줄기가 마치 벌거벗은 모습 같다고 여겨 옛날 양반집에서는여자들 공간인 안채엔 심지 않았다고 하니 참 다양한 대접을 받은 나무다.

무더위와 강렬한 태양빛 아래서도, 태풍이 몰고 온 여름 비바람에도 모습 흐트리지 않고 백일 동안 붉은 꽃 피우며 서있는 배롱나무처럼 알차고 강건한 성남시민들의 일상을 기원해본다. 중앙공원 돌마각 근처를 비롯한 남한산성 등 성남 곳곳에서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데 정말 간지럼을 타는지 확인해 보는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