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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명의 중심통로 강화를 가다

성남문화원, 시민 대상 향토유적지 순례 5차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10/25 [18:1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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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남문화원에서 주관하는 향토유적지 순례 5차 답사가 진행됐다. 이번 답사는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강화도의 초지진, 보문사, 강화역사박물관, 강화고인돌유적, 덕진진을 둘러보는 코스다.
 
▲ 강화를 향해 출발하는 향토유적지 순례 버스     © 비전성남

 

물길을 따라 문물과 삶을 담은 문화가 흐르고 그 중심에 강화가 있다. 강화는 황해를 끼고 한강, 임진강, 예성강과 서해안의 조류가 만나는 중요한 지리학적 위치에 있다.

 
▲ 성남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김대진 성남문화원장     © 비전성남
▲ 답사를 위해 강화를 설명하는 윤종준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     © 비전성남

 

오전 7시 30분. 답사 신청을 한 성남시민 40여 명과 답사를 진행할 성남문화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강화도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김대진 성남문화원장은 성남시의 유래와 강정일당, 둔촌 이집, 남상목 의병장에 이르기까지 처절한 역사 속에서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성남을 물려 준 인물들에 대해 소개했다.

    

윤종준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은 오늘 방문할 강화의 역사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인 초지진     © 비전성남
▲ 보문사로 가는 길가 상점     © 비전성남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인 초지진이다. 외관을 둘러보고 바로 강화도와 석모도를 연결한 석모대교를 건너 보문사로 향했다.

 
▲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한 보문사     ©비전성남

 
▲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한 보문사     © 비전성남
▲  보문사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 비전성남
▲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다른 오백나한     ©비전성남

 

보문사는 강화군 석모도 낙가산에 있으며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 예로부터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함과 함께 해수관음 성지, 즉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보문사의 중심에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으로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다른 오백나한이 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이다. 극락보전 뒤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면 넓은 바위에서 마애불을 만나게 된다.

    
▲ 보문사 내 법음루     © 비전성남

 

점심은 메밀전병과 보리비빔밥으로 건강도 챙겼다.

 
▲ 즐거운 식사시간     © 비전성남

    

강화역사박물관은 강화의 오천 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을 보존, 활용하기 위한 조사연구 및 전시교육 활동을 하는 곳이다. 개국시원부터 청동기, 고려, 조선, 근·현대까지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가 시대를 초월해 있다.

 
▲ 강화역사박물관     © 비전성남
▲ 강화역사박물관     © 비전성남
▲ 강화역사박물관     © 비전성남

 

다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유적지를 답사했다. 김진겸 문화관광해설사는 고인돌은 무덤뿐 아니라 제단, 신성한 지역표시 등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남한에서 제일 큰 탁자식 고인돌로 덮개돌의 무게만 53톤이다. 이는 장정 500여 명이 끌어야만 이동할 수 있는 무게다. 흙으로 바닥을 수십 층 다진 뒤 받침돌을 좌우에 세우고 안쪽 끝에 판석을 세워 묘실을 만들고 시체를 넣은 다음, 판석을 막아 무덤을 만들었다.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강화고인돌유적     © 비전성남
▲ 강화고인돌유적     © 비전성남
▲ 강화고인돌유적 앞에서 단체사진     © 비전성남

 

강화도는 예로부터 해로를 이용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특성으로 숱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설치한 5진, 7보, 9포대, 54돈대 중 덕진진은 사적 제226호로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이끄는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 덕진진     © 비전성남
▲ 덕진진에서 조성녀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답사원들     © 비전성남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의 돈대 중 하나로 광성보와 초지진 중간에 위치해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 역할을 했다.

 
▲ 덕진돈대     © 비전성남

    

남장포대는 15문의 대포가 설치돼 있었으며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반달 모양의 요새로 축조했다.

 
▲ 남장포대     © 비전성남

    

덕진진 경고비는 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고 음각돼 있다. 이는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는 뜻으로 쇄국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육지에 설치된 척화비는 많으나 바다의 문을 걸어 잠근 우리나라의 유일한 척화비다. 경고비에는 탄흔의 흔적이 남아 역사의 아픈 순간을 증거하고 있다.

 
▲ 탄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덕진진 경고비     © 비전성남
▲ 덕진진 앞바다     © 비전성남

    

김칠선(49·야탑동) 씨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초등학생 3명의 자녀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다. "처음으로 답사를 신청해서 왔는데 오늘 답사를 통해 역사공부를 많이 했다. 아이들과 다시 꼭 오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 다둥이 엄마 김칠선 씨     © 비전성남

    

덕진진을 잘 설명해 준 조성녀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역사는 발로 뛰는 것이다.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고 체험하는 것이다."

 

오늘 향토유적지 순례에 참여한 성남시민들은 자신의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이 땅을 지킨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가을의 풍성함을 한아름 담아 성남으로 돌아왔다. 

    

취재 구현주 기자 sunlin12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