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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한 권의 책’, 독서와 낭독의 가치 재발견

서현도서관, 사서와 주민들이 함께하는 낭독 프로그램 운영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11/11 [09:2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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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토요일 오전 10시 20분. 성남시 서현도서관 <낭독, 한권의 책>이 열렸다. 11월 2일에 이어 두 번째다.

 
▲ 서현도서관 낭독 프로그램, '낭독, 한 권의 책'     © 비전성남

 

<낭독, 한 권의 책>은 서현도서관이 개관 첫 해를 보내며 이용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기획했다. 일반 독서회와 달리 미리 읽고 발제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낭독(朗讀)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낭독을 통해 나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경청’의 시간을 갖자는 목적도 있다.

    
▲ '낭독, 한 권의 책' 선정도서인 '징비록(懲毖錄)'   © 비전성남

 

낭독 도서는 『초판본 징비록(懲毖錄)』(류성룡 지음, 김문정 옮김, 더스토리 펴냄). 징비록을 낭독한다? 담당 사서들이 대중성과 시의성 있는 역사 고전, 8회 동안 완독할 수 있는 분량 등을 고려했다.

    

임진왜란 전후 상황을 이야기처럼 서술해서 낭독에 무리가 없고, 지난 달 초 한 TV프로그램에도 소개돼 읽으려는 시민들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또 읽고는 싶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책이라 여럿이 함께 읽는다면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대로 11월 2일 첫 회, 참가자들은 예상보다 많은 분량을 낭독했다.

    
▲ '낭독을 권하는 이유' 를 낭독 중인 참가자들     © 비전성남

 

9일 두 번째 낭독 시간. 먼저 양신자 사서가 준비한 「낭독을 권하는 이유」를 낭독했다. 『생활성서』 2019년 8월호에 실린 글이다. 글쓴이 고진석 사제는 로마 유학시절,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든 이탈리아어 능력으로 구두(口頭)시험을 준비했다. 예상 답안을 작성해 소리 내서 외웠다. 걸으면서, 누워서, 앉은 채로 몸을 흔들면서, 옆방 동료가 핀잔을 줄 정도로 큰소리로 외우고 또 외웠다.

    

글쓴이는 그렇게 해서 첫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 후 낭독으로 공부하면서, ‘독서백편의자현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온다)’이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체득했다. 글쓴이는 낭독은 음식을 입에 넣어 꼭꼭 씹고 맛을 보고 소화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과정과 같다고 한다.    

    
▲ '징비록(懲毖錄)'을 낭독 중인 참가자들     © 비전성남
▲ 징비록 전자책을 낭독 중인 서현도서관 서솔 사서     © 비전성남
▲ 한 참가자가 낭독 중인 징비록(懲毖錄) 전자책     © 비전성남

    

이러한 낭독을 위해 참가자들이 책을 편다. 두 명의 사서까지 모두 14명이 선조(宣祖)가 피난길에 오르는 장면부터 두 문단씩 낭독한다. 분위기가 금세 차분해진다. 낭독에 집중하고 책 내용에 빠지면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모두 다른 목소리지만 한 물줄기로 자연스레 흘러간다.

    
▲ '징비록(懲毖錄)'을 낭독 중인 참가자들     © 비전성남

 

<낭독, 한권의 책>은 90분 동안 쉬지 않고 오롯이 집중한다. 90분 동안 혼자 읽는다면 저렇게 집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소리 내어 읽는 ‘낭독!’. 낱말과 문장이 몸에 스미듯, 책과 더 가까워진다.

    
▲ 낭독 소감을 나누는 참가자들     © 비전성남

 

낭독이 끝나고 참가자들 소개가 이어졌다. <낭독, 한 권의 책>은 ‘부담 없이 참여하는 독서’, ‘함께 읽는 기쁨’이 먼저라, 첫 회 첫 만남의 어색한 자기소개를 얼굴을 익힌 후로 미뤘다. 참가자들이 참여한 이유와 낭독 체험에 대한 소감은 다양했다. 함께 읽어서 좋다는 소감이 많았다.

    

“음악회에서 많은 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연주를 들으면 황홀하다. 가장 완벽한 악기의 연주를 이렇게 듣는 것이 특별한 경험일 것 같아 신청했다.”(송○○ 씨)

    

“이야기로 듣고 책에서 봤던 낭독 모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사서 선생님들이 진행한다고 해서 더 기대된다. 절대 읽지 않을 책을 이렇게 읽어서 좋다.”(최○○ 씨)

    

“신청을 하고 조금 망설였는데 『징비록』이라 무조건 했다. 역사스터디를 하는 중이다. 친구 소개로 두 달 전부터 낭독모임을 시작했다.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너무 좋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낭독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김○○ 씨)

    
▲ 낭독 소감을 나누는 참가자들     © 비전성남

    

“여러 독서회에 참여하고 낭송모임도 경험했다. 독서회마다 장단점이 있다. 공공기관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독서회는 책을 안 읽기도 하고,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가 흐려지기도 한다. 이런 경험에 비춰보면, <낭독, 한 권의 책>은 현장에서 함께 읽는다는 것이 좋다. 읽어야 하지만 혼자서는 안 읽을 『징비록』을 같이 읽는 게 의미 있다. 혼자는 안 읽을 책, 어려운 책을 힘을 모아서 읽는 기회라 좋다.”(김○○ 씨)

    

“아이들 책을 읽어주면서 ‘목소리도 스킨십이 된다’라는 걸 많이 실천했다. 그러면서 낭독의 힘을 체험했다. 이사온 지 3년이지만 아직 이웃들을 잘 알지 못해서 동네주민들을 자주 만나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신청했다. 옆지기와 함께 왔다.”(박○○ 씨)

    

“아내의 권유로 함께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도구로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책읽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다. 같이 읽어서 좋다.”(박○○ 씨 남편)

    
▲ 낭독 소감을 말하는 서현도서관 양신자 사서(왼쪽 두 번째)  © 비전성남

 

양신자 사서는 1·2회 낭독 내내 참가자들이 힘을 보태 읽어낸다고 느꼈다. 이렇게 읽는다면 혼자 읽다 중단한 어떤 책이라도 완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신자 사서와 함께 의기투합해 <낭독, 책 한권>을 기획한 서솔 사서는 “묵독이 이기적 독서라면, 같이 읽는 낭독은 사회적 독서”라고 한다. 다른 이를 배려해서 음색, 음량, 고저장단 등을 신경 써야 한다.

    

서솔 사서에게 낭독 참가자로서 소감을 물었다. “기분 좋은 경험이다. 함께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일체감을 느꼈다. 신경 써야 하는 것도 기꺼웠다.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풍요로움”이라고 한다.

    
▲ 징비록 완독 후 일정을 의논 중인 참가자들     © 비전성남
▲ 서현도서관 낭독 프로그램 '낭독, 한 권의 책'     © 비전성남

   

<낭독, 한권의 책>은 『징비록』 완독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아, 그 다음을 어떻게 진행할지 천천히 의논하기로 했다. 바쁜 연말이지만 시간을 내서 참가하는 이들이 8회를 잘 마치고, 그 경험이 새로운 독서로 이어지길 바란다. 낭독을 지켜본 소감을 덧붙이자면,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낭독의 기쁨과 흐뭇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기대해 본다.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