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성남 음악칼럼으로 올해 새롭게 시작한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의 첫 주인공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하 <2001>)였다.
영화 속 가장 압도적인 음악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했지만,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려면 영화 전반에 쓰인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1>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외에 리게티, 하차투리안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곡들은 영화음악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 방향을 정할 가이드 곡으로 사용된 작품들이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으로부터 <2001>의 음악을 의뢰받은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가 알렉스 노스는 영화 제작 중 사용된 이 가이드 곡들이 자신의 작품 대신 영화에 쓰였다는 사실을 1968년 영화가 개봉돼서야 알았다고 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리게티, 하차투리안,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이 네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은 각각 영상의 특정 장면들에 마치 이름표처럼 사용된다.
행성 너머 떠오르는 태양 장면, 동물 뼈가 도구로 인식되는 순간 인류의 비약적 발전을 상징하는 장면, 그리고 영화 말미 태아를 품은 행성(?)이 나타나는 장면. ‘일출’-‘도약’-‘탄생’의 순환적 의미를 지닌 이 세 장면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사용된다. 환희와 감동이 넘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와 달리 리게티 작품들은 모두 신비로우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우주 암흑 공간을 나타내는 ‘관현악곡’ <애트모스피어 Atmosphères>, 외계 생명체의 흔적인 모노리스(영화 속 매끄럽고 검은 돌기둥)를 상징하는 ‘관현악 반주 합창곡’ <레퀴엠 Requiem>, 모노리스에 접근하는 인류를 암시하는 ‘무반주 합창곡’ <영원의 빛 Lux Aeterna>, 그리고 영화 말미 방 안에 놓인 우주선의 부조리극 같은 장면에 단 한 번 사용되는 ‘성악과 관현악 앙상블’ <모험 Aventures>.
리게티의 곡들은 인간 목소리와 관현악의 존재 & 부재의 조합에 따라 영화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빛’(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과 ‘어둠’(리게티의 작품들)을 나타내는 두 극단의 음악들 사이에 경쾌하게 등장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우주 속에서 우아하게 유영하는 물체들을 표현한다. 춤을 추듯 회전하는 우주 정거장,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 무중력 우주비행기 안을 떠다니는 펜.
이와 달리 하차투리안의 발레 모음곡 <가야네 Gayaneh> 중 ‘아다지오 Adagio’는 광활한 우주 속 인간의 고독을 표현한다. 심해 생물처럼 검은 우주를 유영하며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 비행선과 그 안의 우주인들의 외로움과 단조로움이 하차투리안의 ‘아다지오’를 통해 잘 전달된다.
영화 <2001>에는 위에 소개된 클래식 작품들 외에 두 개의 음악이 더 있다.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영상 속, 우주인 프랭크의 부모님이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와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의 인공지능 ‘할 9000’이 부르는 노래 ‘데이지 벨 Daisy Bell’이다.
인공지능 할 9000이 부르는 노래는, 1961년 입력된 텍스트를 소리로 전환해 출력한 최초의 컴퓨터 IBM 7094가 부른 ‘데이지 벨’에 대한 오마쥬라고 한다. 어둠을 뚫고 빛을 만들어 온 인류의 대서사시와 결합한 클래식 음악의 소개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위에 소개된 음악들과 함께 영화가 상영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작품이 버려진 줄 몰랐던 알렉스 노스의 음악도 들어보길 권한다. 내가 스탠리 큐브릭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 유튜브에 ‘비전성남 영화속클래식 스페이스’를 입력하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음악과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취재 조윤수 기자 choyoonsoo@gmail.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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