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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사라져가는 이발관, 이곳을 지키는 이발사

수진2동 제일이발관 서현석 이발사의 이야기를 담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5/26 [11:5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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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이발관에서 엿볼 수 있는 오래된 풍경    © 비전성남
 
▲ 커트와 면도를 마친 서현석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감기고 있다.   © 비전성남
 
오전 8시, 수정구 수진2동 제일이발관. 서현석(74) 이발사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이발관의 영업을 알리는 사인볼에 불을 켜는 일이다. ‘제일이발관 문 열었어요. 영업합니다’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인볼을 통해 알린다.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위생함의 가위와 면도기, 이발집기류를 정리한 후 위생검열에 손색없게끔흰 가운을 갖춰 입고 손님을 기다린다. 요즘 같아선 하루 네다섯 명이나 올까. 돈벌이라기보다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이 헛걸음할까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
 
“지금은 전문학원이나 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지만, 옛날엔 안 그랬어요.”
 
서현석 이발사는 “열여섯 살 때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어느 이발소에서 머리 감기기, 청소,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이발 기술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곁눈으로 배운 이발 기술로 열아홉 살 때 이발사 면허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당시를 말해주듯 이발관 한쪽 벽면에는 누렇게 색바랜 면허증이 걸려 있다.
 
“이곳 수진2동에 이발관을 연 건 1980년이니까 40년전입니다. 서울 왕십리에서 10년 넘게 남의집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려고 했는데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어요. 성남은 낯선 곳이었지만 누님의 소개로 수진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기와집 한 채를 650만원에 샀어요. 살다 보니 성남에 정이 들었고, 몇 해 후엔 2천만 원 주고 자그마한 건물을 구입해 제 이발관을 차리게 됐어요. 그게 제일이발관입니다.”
 
▲ 커트, 면도, 세발(감기기), 드라이 과정 중 세심하게 면도하는 모습    © 비전성남
 
직원 두 명 두고 일할 만큼 호황을 누릴 때도 있었다. 옛날 일이다. 남자라면 무조건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을 때였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도 남자라면 엄마가 안고 있는 상태로 어르고 달래가며 머리를 깎아주던 때였다.
 
“당시 이발 요금은 2천 원 남짓으로 기억된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미용실이나 남성 전문 헤어숍을 이용하고, 이발관은 현대의 미용 문화에 익숙지 않은 60대, 70대연령층만 찾고 있다”고 말한다.
 
마침 이발관 문을 열고 손님 한 분이 들어오는데 이발사님의 말처럼 70대 어르신이다.
 
서울 답십리에서 오셨다는 전문규(78) 어르신은 “제일이발관 근처서 살다가 1년 전에 이사를 갔지만 새로운 미용실이나 이발관 솜씨에 적응이 안 돼 한 달에 한 번꼴로 이곳으로 이발하러 온다. 20년 단골이다”라고 한다.

그런 분이 주고객이다. 분당은 물론 서울 송파·잠실,경기 광주 등으로 이사 간 후에도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대부분이다.

“자~ 이제 이발 시작하니 사진 잘 찍어요. 커트, 면도, 세발(감기기), 드라이 순으로 이어집니다.”

지난해 말경 공중파 방송에서 ‘오래된 이발관, 이발사 외길인생’이란 주제로 소개됐다고 하더니 촬영 당시를 재연하는 듯하다. 사각사각… 가위에 머리카락 잘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손님은 잠이 든 듯, 이발사는 섬세함을 더한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