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도시 생태계를 통해 본 성남의 정체성과 비전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5/26 [14:49]

 
필자는 성남시에 대한 여러 개의 인상이 있다.

첫 번째는 1989년 경원대학교(가천대학교의 전신)에입학한 누나를 따라 성남시 원도심을 지나던 장면이다. 꼬불꼬불한 언덕에 밀집된 성남시 도심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7년 뒤 분당 아파트의 아이들이 뛰놀던 드넓은 광장이다. 그날은 직장 선배의 집들이였다. 지방도시 출신이었던 그는 30대 중반에 ‘천당 아래 분당’ 아파트에서 행복한 가족의 꿈을 이룬 것이다.

세 번째는 2014년 판교 카카오에서 근무하던 날들이다. 큼직한 구획에 잘 정비된 도로가 펼쳐진 이곳에, 유명한 IT 기업들이 다 모여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젊은 인재들의 출퇴근 인파가 넘쳐났다.
 
2019년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성남시는 전국에서살고 싶은 도시 8위다. 하지만 이면에는 풀어야 할 난제도 많다. 어려움은 주로 성남시의 도시정체성에 기인한다. 세 권역이 각각 다른 이유로 ‘서울의 과밀로 인해 성 밖에 만들어진 도시’라는 형성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판교에는 그 어느 지역보다 인재와 기업이 넘쳐나지만 저녁과 주말이 되면 도심공동화 현상이 나타난다.

분당의 주민들 상당수는 서울로 출퇴근하며 자신이 ‘강남에 가까운 서울사람’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원도심은 판교, 분당과 소득격차가 크다. 성남시의 세 권역 간에는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도 발생하곤 한다.
 
이렇게 성남의 어려움은 ‘정체성 위기’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해야 성남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선은 성남시 세 권역 각각의 고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상을 그리고, 변화해야 할 이슈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는 이미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개척자들을 발굴해내야 한다.
 
또한 개척자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해내면서 장기적 변화를 확산해나가야 할 것이다. 10년 이상 걸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변화가 느려 보이지만 언젠가는 가속이 붙기 마련이다.
  
판교는, 창의성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커뮤니티가 부족하다. 그것은 국가 주도적인 선택과 집중의 산업단지 개발을 한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이들 간의 창의적인 실천공동체, 학습 커뮤니티를 만들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분당은, ‘가족의 행복 추구’라는 핵심가치에 충실하되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밀레니얼 시대에‘행복한 가족’의 이상은 이미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 이주한 분당의 가족들은 지금도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스카이캐슬’로 대변되듯 전 국민이 선망했던 강남은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성남 원도심은, 지역혁신의 허브지만 소득수준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래도 시민사회의 역사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국의 사회적 경제의 실험들을 모으고 발전시키는 지역혁신의 허브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있는 지역화폐가 그 증거다.
 
성남의 발전 가능성은 스타트업과 로컬크리에이터들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판교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당근마켓’은 지역 커뮤니티 회복의 가치를 추구한다. 공동창업자 김용현·김재현은 카카오 재직 시절, 판교의 직장인들끼리 IT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서비스에서 시작했다. 다음 지역은 분당이었다. 분당은 육아용품의 거래가 많았고 어머니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이후 전국으로 확산돼 일간 순사용자 수가 156만 명을 넘으며 이커머스 영역에서 쿠팡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또 다른 카카오 출신 백영선은 판교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판교의 인재들이 매주 저녁시간에 모여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도록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낯선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후 창업을 했다.
 
카카오 출신 김성용은 주말에 각자의 집의 거실과 취향을 공유하는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창업을 했다. 이제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한 가족’의 꿈을 이어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밖에도 이미 많은 개척자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역의 공공도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크리에이티브 도시 생태계를 조성해내는 개척자가 될 수 있다.
 
공공이 민간과 함께 호흡하며 꾸준히 정책을 펴나간다면, 10년 안에 ‘분당에 살면서 판교에서 일하고 원도심에서 창의적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성남의 세 권역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고, 그 가치에 기반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다양한 개척자들이 크리에이티브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면, 성남시는 스스로 발전할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기여하는 창의적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서울 중심의 ‘한강의 기적’ 신화를 넘어서서, 각 지역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발전이 시작되는 시기다. 서울 성 안에서는 시대와 지역의 변화를 이끌 혁신이 나오길 기대하기 어렵다. 언제나 혁신은 주변이라 불렸던 경계에서 시작된다. 성남이 만들어갈 크리에이티브 도시 생태계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