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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 음악] <작은 아씨들> - 못다한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6/05 [15:0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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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은 아씨들> 포스터     © 비전성남

    

2019년 미국에서 제작돼 2020년 국내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은 감독 그레타 거윅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19세기 작가의 이야기가 21세기 감독의 스크린에 담기는 순간, 원작의 시간 흐름은 무너지고 대신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새로운 의미의 흐름을 형성한다. 여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담은 클래식 음악이 영화 곳곳에 사용돼 그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는 작품이다.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표지     © 비전성남

    

특히 셋째 베스가 연주하는 피아노곡들은 감독이 영화 속 대사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는데, 네 자매 중 가장 수줍음 많고 말수 적은 베스가 주인공 조를 격려해 ‘잘 팔리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레타 거윅 감독이 왜 베스가 연주하는 피아노곡 선곡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 피아노 앞 베스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     © 비전성남

    

루이자 메이 올컷의 원작에서 찬송가를 즐겨 연주하던 베스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불어넣은 새 생명을 얻고 쇼팽 녹턴, 바흐 칸타타, 슈만 <나비> & <어린이 정경>을 연주하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 그리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 프레데릭 쇼팽(1810-1849)     © 비전성남

 

베스의 첫 피아노곡은 쇼팽의 <녹턴 5번, 작품번호 15-2>로 고향에 홀로 남겨진 베스의 쓸쓸함을 담고 있다.

    

이 곡은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고국 폴란드를 떠나 유럽 연주여행을 하고 있던 쇼팽이 폴란드 혁명으로 인해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머물게 된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타지에서 혼자가 된 쇼팽과 고향에 홀로 남겨진 베스의 처지가 겹쳐지며,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불리는 ‘녹턴’의 감성이 각자의 꿈과 사랑을 좇아 집을 떠난 자매들을 그리워하는 베스의 마음을 잘 전달한다.

    

베스가 들려주는 부분은 주요 선율이 끝난 후 그 여운만을 담고 있는 녹턴의 마지막 부분으로 그마저도 끝을 내지 못하고 건반에서 손을 떼는 베스에게서 다른 자매들보다 먼저 생을 마감하게 될 운명이 스치기도 한다.

    
▲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 비전성남

    

베스가 연주하는 두 번째 작품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 아리아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다.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작품으로 원곡은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다. 아리아 가사는 양치기의 돌봄 아래 안전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에 대한 것으로, 뛰어난 통치자 아래 평온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을 양에 비유해 만든 곡이다. 당시 독일 작센 지역 공작의 31번째 생일 축하를 위해 쓰인 곡이다.

    

네 자매가 아직 성인이 되기 전, 티격태격하는 조와 에이미의 뒤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베스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때 베스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으로 엄마의 보호 아래 함께 보내는 네 자매의 어린 시절의 평화로움을 잘 드러내는 곡이다.

    
▲ 로버트 슈만(1810-1856)     © 비전성남

    

베스가 연주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피아노곡은 슈만의 작품으로 이웃 로렌스 씨의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달아 연주된다.

    

먼저 연주된 곡은 슈만 <나비, 작품번호 2> 중 10번 ‘가면을 벗기다’로 바로 앞 장면에 등장한 사교파티에 참석한 첫째 메그에게 보내는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가난한 삶과 화려한 비단 드레스의 풍족함이 보장된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잠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실제로 사교파티 장면에서 메그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데이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이 된 메그가 결국엔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깨닫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내용에 대한 베스의 답가라 할 수 있다.

    

베스가 <나비>에 이어 연주하는 곡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 작품번호 15> 중 1번 ‘미지의 나라’로, 자신에게 딸이 연주하던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허락해준 이웃 로렌스 씨에게 보내는 곡이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슈만이 자신의 소년시절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들 중 13곡을 선정해‘어린이 정경’이라는 표제를 붙여 출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직 슈만과 클라라가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 각자 음악연주여행으로 바쁜 시기에 28세 슈만이 19세 클라라에게 편지로 들려주던 동심과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딸을 잃고 손자 로리를 홀로 키우고 있는 로렌스 씨가 계단에 앉아 베스가 연주하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이생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가버린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다른 세 자매에 비해 대사도 많지 않고 화면에 등장하는 비중도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스가 덜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가 담긴 베스의 피아노 선율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 <작은 아씨들> 속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 쇼팽, 바흐, 슈만의 작품들 이야기였다.

    

※ 유튜브에 ‘비전성남 영화속클래식 작은아씨들’을 입력하면 위에 언급된 영화 장면들 & 그와 연관된 클래식 음악을 찾을 수 있다.

    

취재 조윤수 기자 choyoons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