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윤미라 분당구 야탑동
 
며칠 전부터 눈이 아파서 일을 끝낸 후엔 쭉 눈을 감고 있었어요. 눈을 감고 스마트폰, TV와 멀리하며 제가 하는 일은 오직 두 가지 정도예요. 라디오와 책 듣기!

책 듣기가 뭐냐면요. 오디오북 같은 건 아니고 딸아이가 제 곁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라디오를 듣는 것도 좋지만 딸의 목소리로 책을 듣는 것, 이것 참 좋아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저에게 책을 읽어주는 딸의 숨결마저 참 귀하고 사랑스럽거든요.

듣다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하고 조용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들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반성도 해요. 나도 딸이 어렸을 적 이렇게 책을 읽어줬던가. 되돌아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다 미뤘어요. 이렇게 좋은 걸 한 번도 해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고 있네요.

또 눈을 감고 지내보니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부엌에서 저 대신 음식을 만드는 남편의 부산한 소리에서, 쉬고 있을 엄마를 배려하는 딸의 조심스런 기척에서 가족의 소중한 사랑이 새삼스럽게 보이고요. 게다가 멀리 계신 보고 싶은 부모님의 모습도, 한참 연락하지 못한 어렴풋한 친구들의 안부도 그립게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건 눈을 감으니 오롯이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어떤 것에 행복해하는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요즘 그렇게 조금은 정리가 되고 다시 추스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하나를 내려놓으니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신기한 경험에 앞으로도 종종 눈을 감아 보려고요.

어쩔 수 없이 쉬어갈 일이 많은 요즘, 이렇게 눈을 감고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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