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실사화되면서 올해 3월 전 세계적인 개봉이 예정됐던 영화 <뮬란>이 코로나19 유행으로 계속 연기되다 9월 17일 개봉됐다. 한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의 극장 개봉과 달리 정작 미국은 온라인으로만 공개했다.
2010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중국사 입문』 수업 조교를 할 때의 일이다. 수업 첫날 담당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가 중국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단 3가지다. Confucius(공자), Marco Polo(마르코 폴로), 그리고 Mulan(뮬란).”
미국 월트디즈니사에서 199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뮬란’을 봤을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교수님의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
“그 뮬란이 사실은 한(漢)족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
수업 첫날 청강 여부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뮬란이 한족이 아니란 말은 정말일까?
뮬란 이야기는 원래 5~6세기 중국의 북위(北魏, 386-534)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목란사(木蘭辭)’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북위는 역사서에서는 선비(鮮卑)로 기록된 북방 유목민들이 세운 국가다. 조조(曹操 155-220)가 북중국을 통일할 때 중국 북방에 존재했던 다양한 유목민들의 도움을 받았던 이래로 많은 유목민들이 오랫동안 북중국으로 이주해 여러 국가를 세웠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북위다.
그렇기 때문에 목란사에서는 병사 징집의 명령을 내린 것은 '왕' 혹은 '황제'가 아니라 가한(可汗)[칭기스 칸, 쿠빌라이 카안의 칸‧카안과 같은 어원을 가진 유목민들의 최고 지도자의 호칭]이었다. 즉 뮬란이 활동한 북위의 최고 지도자는 유목민의 군주로서 정체성이 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징집의 대상이 된 뮬란(정확히 말하면 뮬란의 아버지)은 누구였을까?
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뮬란이 여성으로서 무예 능력이 있었고, 징집의 대상이 됐을 북위의 백성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중국 북방에서 남으로 이주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뮬란이 북위를 세운 선비족 출신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이런 점에서 뮬란이 한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20년이 넘어 실사화된 <뮬란>은 여러 가지로 ‘21세기적’인 영화다. 과거와 달리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세계적인 이해가 높아져, 역사적 고증에 조금 더 신경을 쓴 모습이다. 또 월트디즈니사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이른바 ‘화이트워싱(비백인 역을 백인에게 무리하게 캐스팅하는 것)’ 논란 속에 뮬란을 맡을 배우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유역비(劉亦菲)를 캐스팅했고, 감독으로는 뉴질랜드 출신 여성 감독인 니콜라 카로(Nikola Caro)를 채용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우리는 1998년보다는 훨씬 다양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가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는 중국 내 팬들의 압박 속에서 유역비는 SNS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로 인해 인터넷에서는 <뮬란> 보이콧 운동이 촉발됐다.
한편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재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사실상 집단 강제수용 시설에 갇혀 있는데, <뮬란> 제작사 월트디즈니는 촬영에 협조해 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감사의 말을 엔딩 크레딧에 넣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화 시위와 촛불 혁명을 경험했던 우리의 모습과 홍콩의 현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 ‘문화말살 정책’을 당했던 선조들의 고통과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모습이 겹쳐지며, 동아시아의 역사와 세계화를 같이 고민해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생각이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방역의 성공, 이른바 K방역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뮬란>의 극장 개봉이 마냥 자랑스럽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