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11월 15일 훈구 대신들에 의해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사림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신진 사림들을 등용해 성리학의 질서로 조선을 이끌고자 했다.
그러나 사림파의 강경한 정치적 요구는 기존의 훈구파와 갈등을 유발했다. 이로 인해 기묘사화가 발발했고 신진 사림의 꿈은 짧은 실험정치로 끝나면서 좌절됐다. 이들은 후에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불리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귀감으로 여겨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성남시 분당구) 장서각에는 순흥안씨 사제당(思齊堂) 종중에서 기탁한 『기묘제현수필』 (보물 제1197호)과 『기묘제현수첩』(보물 제1198호) 두 필첩이 보관돼 있다. 『기묘제현수필』은 사제당 안처순(安處順, 1492~1534)이 구례현감으로 부임할 때 24명의 지인이 써준 송별시를 모은 첩이고, 『기묘제 현수첩』은 1517∼1531년 사이에 12명의 지인이 안처순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첩이다.
시와 편지의 작성자는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 기준(奇遵), 한충(韓忠) 등의 기묘명현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박상(朴祥), 신광한(申光漢), 정사룡(鄭士龍)의 경우처럼 16세기 조선 문단을 이끌던 문장의 대가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두 첩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기묘명현의 친필 묵적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음성과 동정, 회한과 좌절, 애환과 우정이 매 글자와 문장 속에,모든 필획과 한 줄 한 줄에 투영돼 있다.
두 첩에서 기묘명현의 거창한 사상이나 문예적 성취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들의 우정과 연대의식, 벼슬살이와 귀양살이의 실상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시와 편지에 담긴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역사 속 그들을 감정이 살아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대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기묘사화 후 유배지에서 안처순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들의 좌절감과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불안함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진도(珍島)로 이배된 김정(金淨)은 “저는 죄가 무거워서 저들의 사정거리 속에 있으니 며칠이나 더 살겠습니까”라며 체념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배지 남해에서 김구(金絿)는 “저는 본래 기피해야 할 인물이므로 감히 맞이할 수 없습니다만, 자취를 감추어 오신다면야 굳이 거절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심사숙고하여 신중히 출발해야지 경솔해서는 안됩니다”라며 안처순의 비밀리의 방문 소식에 걱정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사소한 부탁, 농담, 격려 등이 섞여 있는 글자 속에서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각은 깊어가는 가을에 기묘명현의 글씨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소소한 감동의 자리를 마련했다. 2020년 장서각 특별전 ‘기묘명현(己卯名賢)의 꿈과 우정,그리고 기억’은 10월 1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열린다.
통상 전시라고 하면 눈으로 ‘보는 방식’으로 꾸며지기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보는 방식’에 ‘읽는 방식’을 상당 부분 가미했다. 전시를 통해 글자 속에 투영된 역사적 맥락과 인문학적 코드를 읽는 즐거움을 관람객들이 느끼길 바란다.
기묘명현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나 그 글씨를 마주한 송시열은 두 필첩의 가치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그 글이 뛰어나고, 글씨가 뛰어나고, 사람이 뛰어나고, 필적이 오래되어 희귀하다는 것이다. 송시열의 탁월한 안목을 믿고 장서각에서 그들을 만나보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는 코로나19에 따라 주 3회(월·수·금) 오전과 오후 예약제로 운영한다(이메일 jsg2020@aks.ac.kr 예약).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 www.aks.ac.kr )에서도 장서각 전시실을 그대로 구현한 온라인 전시관(VR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 하은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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