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용은 2000년 이후 ‘K-beauty’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미용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미의식’이 있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미의 기준은 단연 백옥 같은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는 기미, 주근깨, 잡티가 없는 맑고 깨끗한 피부였으며, 검은 머리카락은 짙은 초록색을 띄는 검은색의 길고 풍성한 머리였다.
중국이나 일본도 희고 깨끗한 피부를 선호하는 것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이 깨끗한 피부를 강조했다면 중국이나 일본은 흰 피부 위에 색채를 중시하는 화장을 선호했다. 중국과 일본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같았으나 표현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중국은 당나라에서부터 화전(花鈿), 액황(額黃), 면엽(面靨), 사홍(斜紅)을 비롯해 이마,콧등, 턱에 흰색으로 하이라이트를 주는 화장으로 발전했으며, 이러한 화장법은 얼굴의 각 부위를 강조해 시선을 분산시킴으로써 얼굴을 작고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반면 일본은 흰색, 빨간색, 검정색의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얼굴 전체에 백분을 바르고, 눈썹을 밀거나 이마 위로 옮겨 그림으로써, 화장을 통해 얼굴은 물론 감정까지도 감추고자 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화장이 색조화장을 통해 얼굴을 드러내거나 감추고자 했다면 한국의 화장은 깨끗한 피부화장을 통해 이목구비(耳目口鼻)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얼굴화장보다는 머리치장에 중점을 뒀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크고 풍성한 가체(加髢)의 발달은 오히려 희고 깨끗한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색조화장이 아닌 피부화장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백옥 같은 피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안이 중요하다. 이는 청결뿐 아니라 깨끗한 피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얼굴에 영양을 주는 면지법이나 수분을 공급하는 세안법에 관심이 높았다. 조선왕실에서는 녹두와 팥 등을 갈아서 만든 조두를 사용했다.
조두는 세정은 물론 미백효과도 뛰어났다. 특히 정월 초하룻날에 조두로 세수를 하면 때가 잘 빠지고 살결이 부드러워지며 얼굴이 희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팥으로 만든 조두는 날비린내가 나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 향을 넣어 비린내도 잡고 향기까지 좋은 비누를 만들어 사용했고 수분과 영양을 주는 천연성분의 소재를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오이, 유자, 박, 수세미 등이다. 오이는 얇게 썰어서 올려놓기만 해도 되고 피부가 촉촉해진다. 박은 줄기를 잘라 세워놓기만 해도 영양 가득한 에센스가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쌀가루, 찹쌀가루 등의 백분을 만들었지만 얼굴에 잘 붙어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납성분이 가미된 연분을 쓰면 부착력은 있지만 피부에 해를 주기 때문에 한국인의 관심은 백옥 같은 피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한국인의 미의식은 얼굴이나 머리를 아름답게 매만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선에서 추구한 미의식은 ‘미용의(美容儀)’로 몸가짐이나 예절을 갖춘 태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며, 전적으로 복식과의 조화에 좌우된다. 한국의 복식구조는 상의와 하의가 구분되는 two-piece 스타일이다. 이는 신체를 드러내고 여성성이 강조되는 복식구조다.
이에 상의인 저고리 길이를 짧게 하고, 하의인 치마를 길고 풍성하게 만든 하후상박(下厚上薄)형의 새로운 스타일이 조선의 피부를 강조하는 화장법과 가체를 이용한 발양과의 조화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한국에서만 통용된 것은 아니다. 하후상박형의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될 때 서양에서도 가슴을 파고, 허리를 가늘게 조이며, 엉덩이를 부풀리는 아우어글라스(hourglass) 실루엣(silhoutte)이 탄생하며 여성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동시대 표현방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한국과 서양에서 여성성이 강조된 미의식이 싹텄으며 그 중심에 백옥 같은 피부를 만들기 위한 한국인의 화장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력은 지금의 K-beauty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비전성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