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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 사업으로 사라진 문화유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1/24 [11:4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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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창대군 묘지석     © 비전성남

 
성남시는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은 도시다. 그런데 성남시 승격의 모태가 된 광주대단지 사업 때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돼 사라지거나 다른 지방으로 이전해 갔다. 그 결과 성남시는 역사적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1968년 서울시는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킬 목적으로 광주대단지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주민의 기본적 인권도 고려하지 않은 이 계획에 문화재 보존에 관한 조치가 들어 있을 리가 없었다.
 
남한산성 자락의 산줄기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묘역과 숯을 굽던 숯가마와 그릇을 굽던 가마터,세종・세조 임금 등이 군사훈련 때 머무른 대야원(大也院)과 왕자나 공주들을 제사 지내던 수진궁(壽進宮), 봉국사, 망경암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했다.

성남 원도심에는 세종 왕자 평원대군, 예종 왕자 제안대군(평원대군의 제사를 모시는 후손으로 입적),선조 왕자 영창대군, 숙종의 누나들인 명선과 명혜공주의 묘가 있었다.
 
공주들 묘는 일제강점기에 고양의 서3릉 구역으로 이장됐고, 왕자들의 묘는 광주대단지 건설 때 다른 지방으로 옮겨 갔는데 묘의 주인공들 모두 사연이 많다.

성남시의료원 터(구 시청 터)에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남유(南瑜)와, 그의 아들로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성을 지키다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한 남이흥(南以興) 장군의 묘가 있었고, 신구대학교 자리에는 고려 말의 충신 김약시(金若時)의 묘가 있었다.
 
광주대단지 안에는 2천 기가 넘는 묘가 있었다. 사람이 살아서 사는 집을 양택(陽宅)이라 하고, 무덤은 죽어서 영원히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이 많은 묘역 중에 중요 역사 인물 유적은 보존되거나, 현황조사라도 했어야 마땅하다.

남이흥 장군 문중 묘역을 당진으로 옮겨갈 때 8톤 트럭 12대에 인조 임금이 줬다는 곤룡포를 비롯해 500점이 넘는 유물을 실어 갔다는 일화도 전해 온다.
 
남장군 묘역은 충남도기념물 제52호로, 유물 41점은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1호로 지정됐고, 남이흥장군문화제가 지난해까지 31년을 이어왔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간 역사 인물 관련 문화유산들은 그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다수 있다.
 
1993년 두께 20cm 대리석으로 만든 영창대군 묘지석이 태평3동에서 가스배관 공사 중에 중장비에 찍혀 깨진 모습으로 출토됐다. 이 사건은 광주대단지 사업때 문화유산이 철저히 파괴된 것을 증명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남은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은 도시다.
 
기고 윤종준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