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이야기] 겨우살이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2/23 [16:30]

 
겨울 숲은 앙상한 나무들로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잎사귀에 가려있던 하늘을 개방감있게 볼 수 있어 겨울 숲에 가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멀리서 보면 얼기설기 뻗어 동그란 새집처럼 보이는 녹색잎을 가진 작은 나무가 가끔 발견된다. 높다란 나뭇가지에 붙어 자라는 겨우살이다. 겨울바람이 제법 쌩쌩 불어도 겨우살이는 흔들거리는 그네를 타는 것처럼 여유로워 보인다.
 
겨우살이는 암수 딴 그루로 전국 어디서나 자란다. 한자로는 동청(凍靑)이라 불리는 겨우살이는 겨울에 어미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도 혼자 초록색을 띠어, 늘푸른나무로 분류된다.
 
겨우겨우 간신히 살아간다고 해 겨우살이, 또는 비록 어미나무에 기대 살지언정 겨울에도 한여름처럼 녹색을 띠고 살아가서 겨울살이라고 불리다가 겨우살이로 됐다는 설이 전해온다.
 
겨울에도 진한 녹색잎에서 광합성을 할 테니 잎을 모두 떨군 어미나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사실 겨우살이는 부족한 양분을 숙주나무(어미나무)에 기생하며 사시사철 물걱정, 양분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나무 중의 얌체족이다.
 
끈적거리며 말랑한 육질에 쌓인 파란 씨앗이 들어있는 겨우살이 열매는 연노랑색을 띠는데 까마귀, 산비둘기, 까치와 같은 새들의 인기 있는 먹이다.
 
종자에는 점액물질이 둘러싸여 있어 새의 부리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떼어내기 위해 새들은 나무의 수피에 부리를 비벼대고 수피 사이에 떨어진 씨앗은 끈적거리는 육질의 일부와 함께 마르면서 마치 고성능의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또한 열매를 먹은 새들이 끈적거리는 육질의 일부와 씨앗을 배설하는데 육질의 방수성 강력 접착성분은 강풍이 불어도, 눈이 와도 씨앗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이후 싹이 트고 뿌리가 돋아나면서 나무껍질을 뚫고 자란 겨우살이는 숙주나무의 수분과 양분으로 살아간다.
 
땅에 뿌리 내리고 치열한 햇빛 경쟁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숙주나무들의 입장에선 어쩔 도리 없으니 겨우살이를 품고 잘 살아간다.
 
숙주나무로는 동백나무, 참나무,밤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등이 있는데 특히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는 상상기생(桑上寄生)이라고 해 옛사람들의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

겨우살이(mistletoe)는 서양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고대 드루이드 교도들에게는 신성한 식물이었다. 동지가 지나고 초승달을 맞은 지 엿새가 되는 날 밤에 드루이드교의 수장은 금으로 만든 낫으로 참나무에 붙어사는 겨우살이를 잘라내 나눴고 마을의 모든 집 출입문에 걸어 천둥과 번개, 잡귀를 물리쳤다고 한다.
 
그 전통은 서양에서 다양하게 이어졌는데 가령 적들이라도 겨우살이 아래서는 서로 무기를 내려놓았고, 중세 시대에는 악귀를 쫒는 의미로 겨우살이를 문이나 천장에 매달았다.
 
가지 몇 개를 베개 밑에 넣고 자면 악몽을 꾸지 않는다고 해서 베개 밑에 넣고 자기도 했다. 새해 첫날 겨우살이가 붙은 나무 아래에서 키스하면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겨울 숲에서 마주치는 겨우살이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겨우살이 아래에서 잠깐 멈춰서 2021년 새해엔 모두가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해도 좋을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