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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essay] 한 움큼과 몇 알

김정미 분당구 운중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3/23 [12:47]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한 움큼과 몇 알
김정미 분당구 운중동
 
“뭐해? 어서 막대기 하나 가지고 와서 냉이나 캐지.” 운중천으로 산책하러 나갔는데 일면식도 없는 분이 나물 캐는 걸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나무막대기를 찾아 들고 합류했다. “그런데 어떤 게 냉이에요? 시골내기인데 잘 몰라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60줄에 들어선 나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줄 듯도 한데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돌냉이는 안된다고, 그러나 먹어도 죽지는 않는다는 설명에 그다지 개의치 않고 캤다.

손에 차곡차곡 쌓인 냉이가 무슨 보화인 양 여겨지며 재미있었다. 왼손 한가득 되었기에 집에 갖다 놓고 다시 산책하러 나올 참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의 배낭에서 검은 비닐을 꺼내 주시며 한 주먹 넘쳐나 곧 떨어뜨릴 것만 같은 냉이를 넣으라고 했다. 게다가 당신의 봉투에서 냉이도 한 움큼 덜어 내 봉투에 넣어 주셨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 뿐 아니라 코로나로 모든 관계가 삭막(?)해진 요즘 욕심스럽지 않게 당신의 냉이 한 움큼을 선뜻 나눠줄 줄 아는 아주머니는 마치 고향의 사촌 언니를 만난 듯했다. 아파트 숲에서 마주한 훈훈한 봄바람이었다.

냉이를 데쳐서 새콤달콤 무치고 된장을 풀어 냉이된장국을 끓였다.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 무슨 봄날의 향연인가! 동 호수를 나누고 헤어졌기에 감사한 마음에 사과 몇 알과 고등어 한 마리를 문 앞에 살짝 놓아두고 왔다. 연애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목하 우리 동네 산운의 봄은 냉이를 타고 북상 중이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½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 사람들-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21년 4월 9일(금)까지 보내주세요(주소, 연락처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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