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동을 찾아가던 날, 하늘은 파랗고 아름다웠다. 태평4동 ‘마을공감’ 담벼락을 이용해 앉아서, 기대서 크는 작은 화분의 화초들이 주인장을 닮은 듯 어여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날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저자 윤흥길)를 각색한 ‘아홉 켤레의 구두를 신은 열 한 명의 배우들’이 걸어서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의 현장감을 느껴보고자 태평동을 찾았다.
6월 21일은 먼저 ‘마을공감’에서 8·10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 영상을 본 후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날 성남시립박물관건립팀의 정은란, 박재홍 학예연구사가 동행했다.
태평동 1761번지(남문로131번길 25-1) 이순예 어르신 댁 대문을 들어섰다. 정은란 학예연구사는 배우들이 집을 둘러볼 수 있게 열심히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비어있던 낡은 집을 성남시에서 구매했고, 성남시 역사박물관으로 옮겨놓을 것이라고 했다.
대문을 들어서자 문간방, 부엌, 마루, 안방, 건넌방이 있고 김치 등을 저장했음직한 지하실도 보였다. 안방 다락을 도배한 신문이나 안방 벽에 붙어 있는 신문(1999년 2월 6일 중앙일보 경기종합편) 기사가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배우들은 빈집을 돌아보면서 1970년대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곳 공간이 이야기 속 배경과 참 흡사했다.
남문로133번길 6-1 앞에는 4개의 나무의자를 둘러놓은 작은 쉼터가 눈에 띄었다. 부채를 부치면서 계단을 내려온 마을 어르신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우리는 약속을 안 해도 시간 되면 이곳으로 모이고, 밥시간 되면 집으로 갔다가 심심하면 알아서들 모인다”고 했다.
골목을 오르고, 설명을 듣고, 그 시대를 생각하는 태평동 골목이 정말 사람 냄새나는 정겨운 골목길이 됐다. 세월로 이어진 사람들의 끈끈함이 느껴졌다.
한국문학가상을 받은, 윤흥길 작가의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90년대부터 국어 교과서에 실려 고등학생의 필독도서가 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독특한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고, 산업화시대 노동계급의 소외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라고 말하는 권 씨, 매일 구두를 닦아 놓고 구두를 골라신고 나가는 것도 안동권씨인 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권(권기홍) 씨는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을 겪으면서 아내의 출산으로 수술비를 걱정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배우 민대식 씨는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의 중심에 있는 분, 권 선생의 삶의 과정을 통해 고민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아홉 켤레의 구두’가 가지는 의미와 상징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과한 연기보다는 작가의 정서 그대로, 오늘 본 현장 그대로를 담아서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 선생(숭신여중·고 국어교사) 역할을 맡은 김승주 배우는 “권기용 씨같이 셋방살이를 하다가 집을 마련하고 문간방에 권씨 일가를 받아들인 오 선생이지만 빈곤의 공간이기보다는 빈곤 안에서 또 다른 빈곤을 보게 됩니다. 오 선생은 학교 선생이지만 세상을 알고 있으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아홉 켤레의 구두를 신은 열 한 명의 배우들’로 각색한 낭독극 연출을 맡은 박종욱 연출가의 얘기를 들어봤다.
“공연에서 형상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 구두다. 구두가 상징하는 바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구두는 자존심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구두는 어떤 의미인가? 구두를 신고 어떤 행보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점에 연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류정애 감독이 말을 이었다. “열 켤레의 구두 중 한 켤레를 신고 나가고 남은 구두가 아홉 켤레의 구두인데 자기의 의미 있는 길을 걷게 해주는 신발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홉 켤레의 구두를 신은 열 한 명의 배우들은 직업으로서의 배우가 아니라 각자 본인들의 신발이 있듯이 구두라는 신발이 갖는 의미는 각자 다르지요. 구두는 선물로도 많이 해주고 있잖아요.”
이어 “사실 작품 속 권(권기용) 씨는 너무 외로웠어요. 성남시민들은 어느 누구도 외롭지 않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시민의식과 정서를 가진다면 좋은 도시, 그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해 가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류 감독은 “작품을 보면 어두웠던 단면을 보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가볍게 봐주면 좋겠다. 50년 전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무겁고 어두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권장도서인 원작을 공연하고 있으니 성남시민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8·10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은 서울시의 무허가주택 철거로 인해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수정·중원구) 일대에 강제로 이주당한 5만여 명 주민들이 1771년 8월 10일 최소한의 생계수단 마련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한 생존권 투쟁이었다고 한다.
‘8·10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 50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는 성남은 창작극, 입체낭독극, 전시회 등을 열어 성남시의 태동과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고 정체성을 찾는 계기를 만들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아홉 켤레의 구두를 신은 열 한 명의 배우들’로 각색돼 오는 8월 13일 오후 7시 30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예술마당 시우터’가 낭독극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성남의 역사가 된 의미 있는 극 중 현장을 기대한다.
취재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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