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역사이야기 | 남한산성(5) 남한산성은 한민족의 반석(磐石)입니다

  • 관리자 | 기사입력 2011/05/20 [14:58]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문화유산팀장 노현균

임금이 머물다 간 남한산성행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임금의 침전인 내행전이 있다. 

내행전 뒤로는 임금에게 희망을 안겨 준 까치의 옛이야기가 스며있는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바위 하나가 있다. 제법 큰 너럭바위이지만 근처를 지나가노라면 행궁의 고풍스러운 정취에 묻혀 그냥 흘려지나가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바위를 자세히 보면 바위 옆으로 조선시대 선인이 써놓은 ‘반석(磐石)’이라는 금석문이 보인다. 

가장 경비가 상엄하고, 출입이 한정돼 있는 공간 안에 있는 바위의 위치를 보아서는 아마도 광주유수부의 최고위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반석의 글씨를 자세히 보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쟁반같이 위가 평평한 반석(盤石)이 아니라 너럭바위를 의미하는 반석(磐石)이라 쓰여 있다. 게다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행전에서 보자면 잘 보이도록 반석이라는 글씨도 동쪽을 향해 있어야 하지만 옆으로 확 돌려져 있어 북쪽을 향해 있다.

나라와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너럭바위 ‘반석남한산성은 외침에 대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반만 년의 한민족을 지켜왔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야욕으로부터 신라를 지켰고,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을 알아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병자년 기세등등한 청나라의 침입에 성이 함락당해 강제적으로 멸하지 않고, 서문 밖 적진이 있는 삼전도(三田渡)로 나가 화친을 이끌어냈다.

이때 비록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항복의식을 행했지만, 이 역시 패망하더라도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척화파(斥和派)와 화해해 왕조를 지키자는 주화파(主和派) 사이에서 선택한 결정일 뿐이다. 

만약 남한산성이 무너졌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한민족의 역사가 진행됐을 것이다.

이제 세계유산으로 가꿔 나가야 해

이후 남한산성은 조선 말기까지 중요한 전략요충지로 관리돼 왔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오르고 여기서 후방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버티며,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이러한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장소에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너럭바위를 의미하는 반석이라는 글자를 임금에 계신 북쪽을 향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상이 물려준 남한산성의 돌 하나, 나무 하나가 다 소중해 보인다. 남한산성이 한민족의 유산을 넘어 세계유산으로서 가꾸어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이야기 남한산성은 이번호로 끝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