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 억새의 물결에서 고향을 그리다 임정화 분당구 수내동
맑고 푸르게 깊어가는 가을 한복판. 이 계 절에 우리의 가슴을 낭만에 젖게 하는 건 바로 억새가 아닐까 싶다.
분당구 정자동 탄천 둔치에 가면 하얀 억새 가 바람에 흔들리며 시민들을 부른다. 그게 근처 아파트 숲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도심 의 가을 낭만을 자극한다. 시민들은 억새 가 한들거리는 둔치를 끼고 씽씽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팔을 휘휘 저으면서 건강 걷기를 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마음껏 담는다.
경기도 가평에 살던 어린 시절, 가을에 엄마와 함께 배추 씨를 땅에 묻었다. “엄마, 왜 이렇게 한 구덩이에 여러 개의 씨를 묻어?” “응 그건.. 한 개는 날아댕기는 새들이 먹고, 한 개는 땅속의 벌거지가 먹고, 땅 위로 솟은 싹은 사람들이 먹게 하는 거란다. 그게 하늘의 뜻인겨. 그래야 농사가 잘 되제.”
어릴 적부터 하늘의 뜻을 알고 지내던 그때 배추밭 옆 논두렁으로는 내 키보다 훨씬 큰 억새가 쭉 서 있었 다. 억새는 보송보송한 솜털 같은 부드러움으로 논두렁을 기다랗게 뒤덮었고 하얀 억새꽃이 파도를 만들 었다.
“파스스... 파스스...” 소리를 내며 가을을 느끼게 해주던 그 억새의 장관은 깊어 가는 가을을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선물이었다.
땔감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여자인 나는 오빠들을 따라 억새밭으로 갔다. 그때는 장갑 같은 게 없었다. 그 억세고 거친 억새를 맨손과 낫으로 벨 때, 손아귀엔 무수히 많은 핏자국이 실렸다.
대여섯 깍지(줌)에 한 묶음씩, 얼추 30분 정도면 다섯 깍지를 벨 수 있었고, 다 되면 오빠들은 그걸 지게로 지고 넘었다. 능선을 넘기까지 억새 땔감 지게를 진 오빠는 몇 번이고 돌부리에 꼬꾸라지기를 반복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중년이 지난 지금, 성남의 도심 한복판 탄천에서 억새를 보니 고향의 억새가 떠오른다.
“파스스... 파스스...”
가을 막바지, 넉넉하고 푸른 탄천의 하늘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유년의 가을을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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