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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삶과 꿈 ‘영조대왕전’ 개최

  • 관리자 | 기사입력 2011/10/25 [13:13]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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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영조(英祖, 1694~1776) 대왕은 제21대 조선의 왕으로 정치적으로는 철혈(鐵血)의 군주였지만 학술과 문화를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호학(好學)과 애민(愛民)의 임금이기도 했다.

조선의 왕 중 제일 길었던 재위 52년(1724~1776) 동안 반란과 충역시비로 점철된 격랑의 시대를 살면서도 군주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고 탕평을 추진하며 화합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었다.

정사의 여가에는 늘 학문에 힘쓰며 만백성의 스승임을 자부했고, 주옥 같은 문장과 격조 높은 글씨에 격언(格言)을 담아 자손과 신민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영조가 집권한 반백년은 분명 조선의 중흥기였다.

영조의 찬란한 업적과 굴곡진 생애를 담은 종합 전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관장 이완우)은 10월 6일~11월 20일 1층 전시실에서 영조의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영조대왕전’을 연다. 이는 조선시대 특정 국왕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 종합전시로 영조대왕의 생애·치적·가족·어제어필의 4부로 구성돼 있다.

생애는 출생과 세계, 연잉군 시절, 세제 시절, 재위 시절로 나누어 각 시기의 주요 사건과 기록을 전시한다.

영조는 여러 방면에서 커다란 치적을 남겼고, 그 중에서도 의례와 규례의 정비, 군무의 진흥을 통한 왕권 강화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영조 스스로 재위 50년의 대표 업적으로 표방한 탕평·균역·준천 등 육대 사업에 대한 주요 자료를 선별 전시했다.

영조대왕의 가족에 대한 자료는 수적으로 가장 많을뿐 아니라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다. 무수리 출신의 생모에 대한 부담과 집착, 형 경종(景宗)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오해, 비빈과 자녀에 대한 애증, 그들의 이른 죽음 등 개인사적으로는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다. 이를 부왕과 모후, 생모, 그리고 비빈과 자손으로 구성했다.

영조대왕은 호학의 군주로서 군사(君師)로 자처할 만큼 저술 활동 또한 매우 의욕적이었고, 새로이 정비한 인쇄술로는 방대한 서적을 편찬·보급해 지식정보 사회를 열고자 했다. 

특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자성(自省)과 훈계의 글 등 5천여 점이 넘는 어제(御製)는 영조의 지성(知性)과 내면세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709-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