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잠시 그치고 푸른 하늘이 나왔다. 연일 쏟아지는 비에 황톳길은 무사한지, 올 봄 산수유가 노랗게 피던 구미동 황톳길이 더 길어졌다는데 어떻게 새 단장을 했는지 이래저래 궁금했던 기자가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뿔사! 몇 걸음도 안 걸었는데 비가 내린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이내 버스를 탔다.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맹렬하게 두드린다. 아무래도 헛걸음이 되려나 보다 생각하며 불곡고등학교 앞에서 내리니 기특하게도 비가 멈췄다.
정류장 바로 근처에 황톳길로 내려가는 푯말과 함께 길이 있어 내려가 본다. 예상대로 황토는 그간 쏟아진 비에 물을 잔뜩 머금었다. 방금 비가 쏟아져 여기저기 난 깊은 발자국에 물이 고인 곳도 있다. 그런데 황톳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나는 동천동서 왔는데…” 자신을 이삭이 할머니라고 소개한 어르신은 굵은 빗줄기에 황토가 통통 튀어오르는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고 말을 건넸다.
미끄러워서 조심하시라는 기자의 말에 이삭이 할머니는 “낙상방지 예방교육이라 생각하고 걸어요. 처음엔 매일 왔을 정도로 좋아요.”라며 성남시에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이번에는 그네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부부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덥고 습한데 왜 여기 왔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여기는 약간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웃는다. 원래 문래동에 살았는데 성남이 좋아서 금곡동으로 다시 이사 왔다는 부인 홍은숙 씨는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나온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눈 후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그 외에도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시민도 볼 수 있었는데 걷기보다는 그저 맨발을 황토에 맞대고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320미터 구간으로 지난해 첫선을 보였던 구미동 맨발 황톳길은 길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의 바람에 따라 지난 6월 24일 총 750미터 길이로 새 단장을 하고 다시 개장했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이 곧게 쭉 뻗어있어 노약자도 천천히 걷기에 좋고 탁 트인 탄천 조망이 시야를 시원하게 해준다.
새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탄천 이용객들을 위한 화장실이 나온다. 길은 그 뒤를 돌아 계속되는데 맨발 걷기를 하다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당부 글이 붙어있다. 여럿이 사용하는 곳이니 꼭 지켜야겠다.
탄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조망대가 있는 마지막 구간은 특이하게도 황토와 마사토를 섞어서 산책로를 내었다.
마사토는 황토와는 다른 질감을 내기 때문에 맨발 걷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미끄럼 방지 효과도 있어 경사면에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시 관계자가 귀띔해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연이은 비 때문에 지금은 이용할 수가 없다.
버스에 오르니 또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지루하게 쏟아지는 비가 완전히 물러가고 매미 소리에 귀가 아픈 한여름이 오면 시원하게 쭈욱 뻗은 이 황톳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어봐야겠다.
취재 서동미 기자 ebu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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