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중고차 유병화 수정구 신흥동
나이를 먹다 보니 크고 고급스러운 자동차가 큰 쓸모가 없다. 걷는 게 건강에 좋다 해서 직장도 버스 타고 다닌 지 오래고, 어떤 땐 좀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런 회사조차도 이제는 곧 퇴직이니 차는 정말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타고 다니던 고급 승용차를 팔고 작고 아담한 경차를 한 대 구매하기로 했다.
중고차를 사러 갔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가격을 물었더니, 딜러분이 조수석 콘솔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팬벨트 교체한 날짜, 타이어 바꾼 날짜, 브레이크패드 교체한 시기와 대략적인 정비 가격 등 여러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별표를 한 참고 사항에는 차가 고급 차량이 아닌 탓에 자동차 아래에서 노면과 닿는 하부소음이 조금 발생하니 감안하고 혹시 그게 거슬리는 분들은 다른 차를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당부까지 적혀 있었다.
일종의 차량 운전일지였는데 그것만 봐도 차의 일생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하나의 역사였다. 보통 꼼꼼쟁이 운전자가 아닌 듯했다. 심지어 차를 산 지 2년 만에 후방 추돌로 범퍼가 완전히 깨져 교체한 사실도 적어놓았다.
딜러는 이렇게 차분하고 꼼꼼한 운전자가 사용한 자동차이므로 가격이 좀 나간다고 했는데, 정말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 차를 샀다.
요즘 솔직히 사고를 숨기거나 중요한 하자가 있는 차를 약간 눈속임해서 팔아 치우는 주인들도 있는데 이렇게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차를 파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정말 좋은 차를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나중에 이 차를 팔게 되더라도 나 역시 다른 주인을 위해 똑같이 해야겠다!
차를 사고 이렇게 기분이 좋은 적 있었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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