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는 한국학을 배우러 온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졸업 후에도 한국에서의 경험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주고받은 마음나눔(感通감통)이 적잖은 역할을 했으리라.
학문의 뜻을 좇아간 낯선 땅, 그곳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과 반가운 재회에의 염원은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사람들에게도 있었다.
8~9세기는 상상 이상으로 국제 교류가 활발했다. 여러 지역의 인재들은 학문과 문화를 찾아 당의 장안과 오대산(중국 산시성 소재)으로 모여들었고 왕효렴과 구카이도 이곳에서 만났다.
왕효렴은 발해 문인 관료였고 구카이는 일본 진언종(真言宗)을 개창한 승려였다. 804년 일본 사신단 견 당사 일행은 장안으로 오는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구카이를 포함한 사신단의 일부만 당에 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효렴 일행은 숙소를 내방해 이들을 위로했고 사신단은 이에 깊이 감동했다.
당시 문사들은 마음을 시문으로 표현하여 서로 주고받았는데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구카이와 왕효렴은 장안에서 시문을 나누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814년, 왕효렴은 대사로서 일본을 방문했고 구카이와 만나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서로 엇갈린다. 왕효렴은 귀국길에 바다에서 표류하다 일본 에치젠 지방에서 천연두에 감염돼 815년 사망했는데, 재회를 모색하던 구카이는 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구카이의 애끓는 심경은 시문으로 남아 현재까지 전한다.
“발해 왕대사 효렴이 병들어 사망하였다. 이런 소식을 듣는 일은 견디기 힘든데 하물며 고향 같은 오랜 옛 정의 일이니 어이할까..” (『습유잡집拾遺雜集』에 수록)
만약 왕효렴과 구카이가 오늘날 살았다면 더 많은 시문을 주고받았을까. 국제적 만남이 녹록지 않았던 시대, 문사들이 남긴 애틋한 사연은 잦은 교류와 만남이 익숙한 우리에게 마음을 나눈 만남의 가치와 깊이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별기고 구난희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 전공 _ 한국학중앙연구원(https://grad.aks.ac.kr)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소재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