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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이야기 속으로] 사할린 한인들의 라디오, 그리고 고향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4/12/30 [21:3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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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 한인들이 야간에 한국 AM 라디오 방송을     

 

일제는 1938년부터 조선인을 강제적으로 남사할린에 투입해 석탄 채굴, 벌목, 비행장 건설 등의 노역을 시킨다. 1945년 일제 패망 후에도 한인 다수는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패망 즉시 조선인의 지위를 외국인으로 편입시켜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귀환시킬 대상에서 지워버렸고, 소련 정부도 사할린 상주 노동력 손실을 원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한반도에는 사할린에 남겨진 조선인의 귀환을 요청할 수 있는 정부 기구나 기관이 없었다.

 

사할린 한인들은 재빨리 일본 학교 건물을 접수해 조선어교육을 시작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냉전이 심화되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기회는 요원해졌다.

 

1950년대 소련 정부는 변방의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방송사상교육을 강화하면서 라디오 보급을 시작한다.

 

사할린 한인들은 전파 난반사로 인해 야간에만 한국 AM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간에 한국 라디오를 듣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소리가 지직대거나 끊기는 일도 잦았다.

 

한인들은 몰래, 조금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포종점>, <새타령>, <갈대의 순정> 가사를 노트에 적어 가며 배웠다.

 

한 곡을 통째로 여유 있게, 또 반복적으로 들을 수 없던 사람들은 들리는 만큼, 기억할 수 있는 만큼 가사를 적어 다른 한인이 들은 노랫말과 비교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 <[LIVE 낭독콘서트] 사진 신부와 파친코 - 세계에 뿌리를 내린 한인 이주 이야기    

 

해방 전 건너간 사할린 한인 1세를 대상으로 한 영주귀국 정착 사업이 1990년대 말 시작됐다. 2020년 5월 사할린 동포의 자녀와 그 배우자로까지 영주귀국 대상을 확대하는 법도 통과됐다. 마침내 라디오에서 그리던, 노래를 통해서만 꿈꾸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특별기고 조일동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류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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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aks.ac.kr )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