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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돌봄 정책과 영어 알파벳

[K-이야기 속으로] 최수연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6/06/25 [18:4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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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K-돌봄의 등장

 

   한국의 문화상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하게 소비되면서 알파벳 “K”가 붙은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K-, K-드라마, K-뷰티가 그 선두에 있다. 이제 “K”는 특정 문화산업의 상품을 넘어 한국의 정책 영역을 가리키는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초,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면서 “K-방역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 그 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K”는 정책 영역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는 “K-돌봄이다. K-돌봄이라는 단어에서 “K”는 급속한 고령화, 저출산, 1인 가구 증가와 같이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돌봄 위기의 조건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한국의 돌봄 정책이 글로벌 돌봄 노동 시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글에서는 한국 돌봄 체계의 변화 과정 속에서 이주 돌봄 노동자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돌봄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돌봄 정책의 쟁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 돌봄 이미지 2 (Unsplash의 Diomari Madulara)  © 비전성남

 

 

F, E, D: 한국의 돌봄 체계와 비자들

 

   한국에서 돌봄은 오랫동안 가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로 여겨져 왔다. 아이를 돌보는 일, 노인을 돌보는 일,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은 주로 가족 구성원, 그중에서도 여성의 책임으로 맡겨졌다. 그러나 많은 여성이 임금노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가족 안에서 필요한 돌봄을 모두 감당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정부는 공적 돌봄 제도를 확대해왔다. 보육서비스, 노인장기요양보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공적 서비스가 모든 돌봄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봄은 여전히 가족의 책임과 민간 시장의 거래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돌봄 체계가 가족, 정부, 시장을 축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안에서 이주민들의 돌봄 노동은 중요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 이주 돌봄 노동자들의 체류 및 노동 조건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비자로 F, E, D가 있다.

 

   먼저 F 계열 비자는 대체로 가족, 동포, 거주, 정주와 관련된 체류자격이다. 예를 들어 F-6은 결혼이민 비자. 2000년대 초 결혼이주여성들은 배우자, 며느리,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국 가족 안에 들어왔다. 이들의 이주는 흔히 가족 형성의 문제로 설명되었지만, 실제로는 출산, 양육, 노부모 부양, 가사노동 등 가족 내 돌봄을 지속시키는 역할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F-6은 단지 결혼을 통한 체류자격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여성의 돌봄노동을 계속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통로이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F-4 재외동포 비자가 있다. 그동안 한국의 간병 노동과 가사노동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들은 중국동포, 특히 조선족 여성들이었다. 특히 간병의 경우 중국 출신 재외동포가 전체 간병 인력의 상당수를 차지해왔으나, 저임금·고강도 노동의 특성으로 인해 이 영역에서도 인력 부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 새롭게 E, D 비자를 통해 이주자들이 돌봄 영역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봄 인력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주 돌봄 노동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4년에 시행된 서울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E-9 고용허가제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존의 E-9 비자가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등 이른바 인력난 업종의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가정 안의 돌봄 영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작부터 여러 논란을 낳았다. 서울시는 시범사업 운영과 향후 계획에서 민간 자율 운영 방식을 강조했는데, 이는 외국인 여성 노동력을 활용해 개별 가정의 돌봄 공백을 메우려는 방식이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결국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이러한 논란 속에서 시범사업 운영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D 비자가 한국 돌봄 체계에 등장하고 있다. D-2는 유학생 비자이고, D-10은 구직 비자. 최근 정부는 유학생 인력을 요양보호사로 활용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대학 시범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는 외국인 학생들을 한국 대학으로 유치하고, 한국어 교육과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과정을 거쳐, 졸업 후 요양시설에 취업하도록 연결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 20여 개 대학이 선정되어 20261학기에 과정이 시작되었고, 2년의 교육과정을 거쳐 2027년 말 유학생들이 취업하게 되면 시범사업은 일차적으로 완료된다. 이 과정에서 유학생들은 대학의 관리, 고용기관의 요구, 출입국 행정의 통제 사이를 오가며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노동자로 길러진다. 그러나 이들이 학생이면서 동시에 예비 노동자이고, 취업을 통해 체류자격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이주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권리를 누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한 문제로 남아 있다.


▲ 돌봄 이미지 1 (Unsplash의 Joshua Hoehne)     ©비전성남

 

U: 돌봄의 보편성

 

   돌봄은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생애 과정에서 주고받는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보편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universality“U”를 중심으로 한국의 돌봄 정책을 다시 살펴보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모두인 반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특정 집단으로 한정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 조선족 간병인,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 그리고 최근의 외국인 유학생 요양보호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돌봄 체계는 특정 이주 여성 집단의 노동에 기대어 재조직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확인한 것처럼, 돌봄을 특정 집단의 노동에 계속해서 의존하는 방식은 돌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이는 돌봄의 위기를 주변화된 집단에게 전가할 뿐이며, 그 자체도 일시적으로만 작동한다. 따라서 돌봄 정책은 단지 부족한 인력을 어디서 데려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돌봄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삶과 권리 역시 공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전환, 즉 돌봄의 보편성을 반영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특별기고 최수연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