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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아내의 바가지는 일류 오케스트라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6/04/21 [10:5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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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바가지는 일류 오케스트라
 
김상욱분당구 수내동
 
3남3녀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의 어릴 적, 70년대 당시에 아버지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아버지기침소리 한 번에 온 가족이 숨소리를 죽일 정도였다.
얼마 전 금요일, 퇴근 후 소파에 앉아서 휴식모드로 들어가려는 찰라, 아내가 내게 “캔디(우리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 먹이 그릇 좀 사다 줘요” 하는 게 아닌가.
‘뭐라구? 가장인 날더러 개밥그릇(?)이나 사오라고? 그것도 온종일 직장에서 근무하느라 퇴근해서 피곤한 사람에게???’
순간, 그런 걸 남편더러 시키는 아내에게 화가 났고, 저 녀석들이 바라서 허락해 준 애완견조차 관리를 제대
로 못해 애비가 개밥그릇이나 사오도록 만든 아이들에게 뿌직뿌직 울화가 치밀었다. ‘집에 사람이 몇인데 퇴근해서 쉬려는 내게 개밥그릇을 사오라는 거야?’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가장들 중 그런 말 어디 마음대로 밖으로 내놓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꾹 참고 침착하게 “애들 좀 시켜보지 그래요”라고 말했다.
“나, 밥 해야 하는데…”라는 아내. 큰놈은 여자애라 밤 시간에 내보내기 그렇고, 아들놈은 축구 하다가 다리
를 접질려 목발 짚고 다니고 있고.아내의 말을 들으니 나도 ‘그렇다고 이 시간에 가장에게 개밥그릇 심부름을 시키는 게 말이 돼?’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그리고 이어서 들린 아내의 ‘하명’ 한마디 추가. “나가는 길에 이 음식물 쓰레기도 좀 버려 주시면 안 될까용?”
그걸 내게 맡기는 아내도 이번엔 살짝 미안했는지 말 꼬리에 ‘용’을 붙인다.나는 기꺼이 아내가 준 음식물 쓰레기 봉지도 받아들었다.
김치냄새 풍기는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뼛속부터 가장의 포스가 느껴지던 아버지 세대와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요즘, 그때의 아버지가 지금의 이 막내아들을 보시면 뭐라 하실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떠오르는, 예전에 읽었던 책에 나온 글귀 하나.
‘남편들이여, 아내의 잔소리와 바가지를 일류 오케스트라 연주로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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