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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성남인] 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요?

시각장애 딛고 시(詩) 쓰는 김민자 어르신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4/23 [14:53]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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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머니가 그립다는 김민자(78·정자동) 어르신은 “하나님, 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요?” 하고 매일 감사 기도를 올린다.
 
기자가 방문한 날 어르신은 비전성남 점자책 4월호를 읽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든 책을 안 읽으면 휴지가 될 것 같아 아까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칠판글씨가 잘 안 보여 교탁 앞에 책상을 마련해 주셨던 선생님의 배려로 열심히 공부해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대사 댁 집사로 멕시코, 인도, 독일 등지로 함께 따라다니게 됐다. 요리를 배워 만들기도하고, 간간이 고향을 그리며 적었던 시를 대사 부인들 앞에서 낭송하면 문학에 소질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어르신은 25세부터 사용한 콘택트렌즈가 피로로 인해 각막 손실을 가져오고 50이 훌쩍 넘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안과 검사 결과 시력을 잃었다. 65세에 뒤늦게 시각장애 1급을 받고 2002년 정자동으로 이사오면서 동주민센터 노인돌봄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요즘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주 3회 돌봄도우미의 케어를 받고, 그 외에는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한다. 어르신은 20분을 걸어 분당도서관 독서클럽인 시각협회 점자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컴퓨터로 1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전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넓은 마을’의 시각장애인 동호회 ‘멍석마을’에 댓글이 많이 올라와서 즐겁다.  
 
2012년부터 매주 수요일 한마음복지관 문예창작교실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는 김민자 어르신. 정란희 강사는 어르신을 “작품 쓰는 숙제를 꼭 해오는 모범생”이라고 한다.
 
어르신은 어느 날 목련꽃 두 송이를 젖은 신문에 싸서들고 그날따라 지하철을 탔다가 길을 잃어 시간에 많이 늦었다. 글을 쓰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꽃을 만져보고 향기도 맡아보고 싶었다는 어르신. 아름다운 마음과 깊은 배려심, 어르신은 천생 시인이다.  
 
계간 『한국작가』 시 부문에 등단한 후 2017년 4월 시집 ‘빛이 나를 부르고 있어’(88편)를 발표한 지 꼭 1년이 됐다. 성남에 살면서 행사 때는 시 낭송도 하고, 10월 15일 ‘흰 지팡이의 날’에는 ‘흰 지팡이 헌장’을 낭독하기도 한다.
 
“시는 나에게 기쁨이다. 오래오래 시를 가르쳐 주는 정란희 선생님,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신근영 선생님, 장애인을 이끌어 주는 분들이 늘 고맙다”는 김민자 어르신. 숙제로 적은 시가 350편은 될 거라며 행복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답다.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