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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국가가 나선 노총각, 노처녀 결혼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04/24 [07:5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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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의정     © 비전성남
▲ 신부 행차_ 국립중앙박물관    ©비전성남
통계청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6년, 대한민국의 혼인건수가 40년 만에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계속 높아지고, 내 집 장만은 더 힘들어지는 등 경제적 빈곤이 혼인 회피로 이어지는 현상을 직면한 우리에게 역사는 국가의 역할을 가르쳐줬다.
“자녀가 30세가 가까워도 가난하여 시집을 못 가는 자가 있으면, 예조(禮曹)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헤아리고 자재(資材)를 지급한다. 집안이 궁핍하지도 않은데 30세 이상이 차도록 시집가지 않는 자는 그 가장을 엄중하게 논죄한다.”
이 내용은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경제적 사정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혼인을 시켜야 하며 노처녀가 되도록 시집을 보내지 않은 부모는 처벌한다는 조항을 법전에 올려놓았다. 늦도록 혼인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1791년 2월 어느 날 정조는 한성(漢城) 오부(五部)에 명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혼인하지 못한 백성들에게 돈과 포목을 지원하는 혼인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그 결과 1791년 5월까지 남녀 한 명씩을 제외하고 모두 혼인할 수 있었다. 한쌍의 남녀가 혼인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성판윤(서울시장)과 관리들은 난리가 났다. 왕이 야심차게 추진한 혼인 프로젝트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모두가 전전긍긍할 때 절묘한 제안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을 결혼 시킵시다.” 그야말로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이 아닌가! 정조는 이 두사람의 혼인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국가가 혼인을 직접 주관하게 했다. 일반 백성의 혼인을 위해 국가 전체가 나서게 되는 사상 초유의 대형 혼인 이벤트가 펼쳐진 것이었다. 김희집과 신씨의 혼인 이벤트는 당시 큰 화제를 낳았다.
희곡작가 이옥은 이 소재로 단 3일 만에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인 <동상기(東床記)>를 지었다. 이 작품에서 결혼을 바로 앞둔 노처녀 신씨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측간으로 달려가 가만히 개를 불러 말하였다. “멍멍아, 내가 내일 모레면 시집을 간단다.”… 단지 하품만 한 번 하니, 그 처녀 민망하고 민망하여 또 개를 보고 말하였다. “멍멍아, 내가 너에게 허황된 말을 할 것 같으면 내가 너의 딸자식이다.”
혼인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쁜 노처녀가 체면 때문에 그 즐거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가 그곳을 지키는 개를 불러 ‘나 시집간다! 나 결혼한다고! 정말이라니까!’라고 외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2016년 역대 최저치의 혼인율 보도를 보고 있자니 18세기 후반 정조가 추진한 노총각 노처녀 혼인 이벤트가 떠오른다. 경제적 문제로 결혼을 할 수 없는 현실은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적 문제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국가 정책이 돼야 한다. 가정이 번성하고 백성들이 즐거운 것이 태평성대 아니고 무엇일까? 꽃비가 날리고 봄바람 솔솔 부는 봄날, 대한민국의 솔로들은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