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사 5일차 목단강 강가에서 마주한 <팔녀투강비>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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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성 계서시에 있는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지 기념비 앞에서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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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4월 2일부터 7일까지, 성남시에서 주관하는 독립운동가 웹툰 만드는 일을 하는, 그림얘기꾼(漫畵家)들을 따라 중국엘 다녀왔다.
서양제국주의 정책을 흉내낸 왜국의 악행이 이 나라 조선에서 벌어졌을 때,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뒷짐을 진 채 빙긋이 웃으며 제 나라에 떨어질 이익이나 셈하고 있었다. 그럴 때 이 나라 피붙이(民族)들이 울부짖으며 저들 부라퀴짓거리에 얼마나 분통해했을지, 우리는 근 70년 동안, 추상적으로 또는 눈먼 상태로 멀건이 바라보며 지내왔다. 독립운동입네 3.1운동입네 하는 얘기들은 그냥 박제된 말투인채 여기저기 동상이나 세워놓고 정치패들은 헛소리들이나 지껄여왔고, 앎꾼(知識人)이라는 패들 또한 거기 맞게 웅얼웅얼 지껄이곤 했다. 부끄럽고 불쌍한 우리 근현대사다.
나는 중국엘 다녀온 뒤로 지금까지 실은, 정신이 하도 멍멍해서 빌빌대는 나날을 지내고 있는 중이다. 저 위대한 우리 피붙이 전사들의 눈부신 행적들을 지켜본 느낌으로 이렇게 한가한 나날을 지내기란 퍽 두렵고 또 답답하다는 생각 탓이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지금껏 잘 살아오고 있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가들이 뜨거운 피로 나라를 지켜내어 가능했음을 중국 답사에서 배웠다. 참 강렬한 느낌을 받은 여행길이었다. 나라의 나라됨이란 그냥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이 외적으로부터 꾸준하게 지키고 가꾸는 것이며, 그런 마음가짐이 잠시 허술하게 틈새를 보일 때면 어김없이 외적이 침략해 들어온다는 것을 독립운동가들의 눈빛에서 보았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들에게 패배한 일본군들이 총력을 기울여 독립군 멸살 공격을 가했을 때, 독립군들의 퇴로를 돕기 위해 나선 여덟 명의 여전사들의 장렬한 죽음을 기념하는 <팔녀투강비(八女投江碑)>에서 받은 느낌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여덟 명 가운데 조선족 젊은 여성 둘이 있었다. 안순복(安順福)과 이봉선(李鳳善)! 안순복은 독립전투에 나선 젊은 독립운동가 박덕산(동북항일구국군)의 아내였다. 안순복은 두 살 아들을 피폐한 마을의 중국인 부인에게 겨우 맡겨 놓고 싸우다가 목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모든 존재, 특히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가 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며 어깨에 힘주어 뻐길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야말로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낮춰 내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홀로 이지구 땅에 와 있지 않다. 나와 너 그리고 그, 그들이 이웃해서 함께 지내야 하는, 그런 운명을 등에 진 채 살아내야 하는 존재가 우리다. 그야말로 살아 있다는 덫에 걸린,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그런 있음 조건이 우리를 오랏줄에 꽁꽁 묶어 놓고 있는 꼴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날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위대하기도 하며 동시에 너무 빤하게 시시하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너를 또는 네가 나를 시시하다고 말한다든지 있음의 높낮이를 판가름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와너의 있음 값은 높낮이가 정말 있는 걸까?
독립운동의 역사는 제국주의 출현과 끈이 이어져있다. 19세기로부터 제국주의 책략을 채택한 서양제국주의 역사와 그것을 본받은 왜국의 제국주의역사는 이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하며 다시는 제국주의의 나쁜 손발 짓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치고 누구 앞에 무릎 끓고 고개를 숙이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910년 강제로 우리 땅에 밀고 들어와 저벅거리며 거들먹대던 일본군들을 좋아한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9년 만에 터져 올린 1919년 3·1운동은 이 민족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위대한 용틀임이었고, 국내외로 몸을 피해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정신은,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커다란 내림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은 중국 해림(海林)의 김좌진 장군 기념관에 걸려 있던 사진들이다. 일본군이 아이를 칼로 저며 죽이는, 어 끔찍해! 그런 일들을 겪으며 들고 일어선 우리들 핏줄인 독립운동가들의 피 끓던 분노와 슬픔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용틀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