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접어들면 가을을 풍성하게 했던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열매와 잎사귀를 모두 떨군 나무들이 앙상하다. 앙상한 가지에 늦게까지 예쁜 주황색열매를 매달고 더 선명해지는 나무가 있다. 바로 감나무다.
우리 민족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감나무를 조상들은 ‘오덕(五德)을 지닌 나무’라고 했다. 목질이 단단한 감나무 중 굵은 나무속에 검은 무늬가 있는 것을 목감나무라 불렀는데 우리 조상들은 감나무의 검은 무늬를 문(文)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대부 집안에선 문갑이나 사방탁자 같은 집안의 물건을 만드는 데 목감나무를 썼다.
단단한 감나무로 만든 화살대는 튼튼해서 무(武)의 덕을 지녔다고 생각한 우리 조상들은 감의 껍질과 알맹이의 색이 같은 점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겉과 속이 같으니 충(忠)을 상징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서리가 내려도, 눈이 와도 가지에 달려 있으니 절(節)을 지녔다. 감나무는 이가 없는 노인도 즐길 수 있는 홍시를 선물하니 우리 조상들에게 효(孝)까지 갖춘 나무였다.
‘감쪽같다’는 말의 유래를 설명할 때 ‘감쪽’을 ‘곶감의 쪽’으로 보지 않고 ‘감나무 가지를 다른 나무그루에 붙이는 접’을 뜻한다고 보면 감나무는 인고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감은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볼품없는 작은 열매가 열린다. 그래서 좋은 감은 고욤 나뭇가지를 째서 접을 붙여 얻었다.
눈이 달린 감나무의 가지를 붙이고 끈으로 칭칭 감아두면 고욤나무와 감나무의 수액(水液)이 합쳐져 접이 붙는데, 접을 붙인 다음해에는 고욤나무와 감나무가 밀착돼 접을 붙인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접을 붙인 것처럼 흔적이 없는 상태’를 ‘감접같다’고 표현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감쪽같다’로 변한 것이다.
어렵사리 감접을 거쳐 좋은 감을 얻은 것을 보고 우리 조상들은 큰 고통을 견디고 배워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사와 차례상에 꼭 감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익은 감을 남겨두곤 했다. 감을 매달고 차가운 바람을 이기고 있는 감나무를 보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도 생각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12월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