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주고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말이다. 낯선 곳 또는 익숙한 곳에서 가족이나 지인과 경험하는 색다른 일상은 우리에게 틀림없이 추억 그 이상의 의미를 준다.
11월 21일(목) 오전 10시 성남시청 온누리실. 태원준 여행작가의 어머니와 함께한 세계여행담을 듣기 위해 많은 시민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작가는 어머니와 약 600일간 80개국 250여 도시를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행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줬다.
태원준 여행작가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EBS <남미의 심장, 볼리비아>, KBS <다큐공감>,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마이 트래블 라이프>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했다. 『딱 하루만 평범했으면』,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 등 다수의 저서도 출간했다.
“다들 여행 좋아하시죠. 오늘은 강연이 아닌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라 생각하시고 들어 주세요”라며 백수에서 시작해 여행작가가 되기까지의 여행담을 시작했다. 이유 있는 여행 대학 졸업반, 취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은 다른 사람들 손에 넘어가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가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나도 심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남편과 엄마를 연달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시던 어머니가 던진 “원준아, 이제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는 어머니의 말이 자식으로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어머니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당시 어머니 나이 60이셨고 생신을 맞아 선물 겸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계획했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면 국내외 곳곳을 여행했고 졸업할 때 즈음엔 우리나라 150개 시·군과 해외 30개국 여행을 마쳤다. 여행계획을 세운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식당에 매일 나가 일을 도우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오랜 설득 끝에 어머니가 마지못해 보름만 하자며 여행을 허락하셨고 30년 넘게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30살 아들과 60살 어머니의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한 달만 계획한 여행 2월 중순 배낭 하나씩 메고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칭다오로 출발했다. 1개월을 계획한 배낭여행이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저렴한 이동수단을 이용했고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어머니와 설레는 맘으로 도착한 첫 여행지에서 첫 번째 난관이 시작됐다. 칭다오의 2월 날씨는 영하 15~20도로 몹시 추웠다. 어머니는 너무 추워서 3일 동안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으셨고 날씨를 미리 확인하지 못한 아들을 원망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목적지 베이징으로 향했다. 칭다오에서 베이징까지 고속 기차는 5시간, 일반 기차는 16시간 정도 걸리는데, 당연히 비용이 훨씬 저렴한 일반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베이징까지 가는 동안 서는 역마다 많은 사람이 타고 심지어 가축들까지 타서 동물들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오래 앉아있어 허리도 아프고 시장통 속 같은 기차 안에서 힘들어진 어머니는 베이징에 도착하자 마자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며 화를 내셨다.
베이징 도착 후 2일 동안 자금성, 천안문 등 베이징 최고의 볼거리를 관광했지만 어머니는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으로 여행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3일 만에 대반전의 사건이 일어났다. 베이징 길거리에서 춤추는 무리의 중국인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웃으며 춤을 추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머니가 춤추는 것이 창피해서 어머니께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야, 내가 신경 쓸 사람, 나 흉볼 사람 없는데 뭐 어떠냐! 너무 좋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신경 쓰고 책임을 지며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여행에서 이런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어머니에게 여행이 추억과 자유로움이라는 생각을 했고 어머니에게 맞춤 여행을 시작했다.
2주 후 사천성의 청도에 왔다. 호스텔에 묵었는데 호스텔은 여행객 유치를 위해 금요일 저녁마다 만두 빚기 대회를 열어 우승상품으로 맥주를 줬다. 물론 어머니도 참가하셨다.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의 4개국이 참가해 대회가 열렸으나 5분 만에 강제 종료되고 말았다.
시작 1분 동안 만두 한 개도 빚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어머니는 6개나 빚었고 더 이상의 경기 진행이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가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품으로 받은 칭다오 맥주를 드시면서 어머니는 너무 좋아하셨다. 이날 어머니는 “원준아, 호텔이 아니라 호스텔에 묵어도 이런 재미도 있고 좋다”라고 하시며 호스텔의 매력를 알게 되셨다.
3주 차에는 중국의 최남단 운남성의 리장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뤄졌고 모든 집이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져 꽃길, 물길 따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1주일을 보내고 계획한 여행 한 달을 채웠다.
여행은 내일이 막 궁금해지게 하는 것 어머니와 그동안 여행을 돌아보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대화를 했다. 어머니는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60평생 받아본 생일 선물 중 최고였어. 원준아, 엄마는 결혼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라는 말씀을 던지셨다. 이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이자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말이었다. 30년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매일 쉬지 않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삶을 사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내일이 궁금해진다는 말은 내 생각을 180도 바꿔놓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원준아, 엄마 이제 한국 가기 싫은데···, 머물고 있던 곳을 떠났더니 머물고 있는 곳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말씀을 하시며 60평생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의 허커라는 도시에서 우정의 다리를 걸어서 건너 베트남의 라오카이로 향했다. 우리나라 여권은 비자 발급 없이 180개국 정도로 여행이 가능한 여권파워가 강한 나라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큰 계획 없이 여행이 가능했던 것도 여권파워가 한몫했다.
여행은 편견이 무너지고 한계가 사라지는 것! 베트남의 하노이 도로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고 베트남 인구보다 오토바이의 수가 많을 만큼 오토바이 천국이다. 평소 오토바이를 타면 죽는다는 편견을 갖고 계신 어머니는 이곳에서 오토바이의 매력에 푹 빠지셨다. ‘세움’이라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기사들만 아는 골목 구석진 지름길로 다니며 현지인들의 삶을 더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어떤 어려움이나 마주하기 싫은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을 해결하고 적응하며 잠재력을 발휘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 한계라 여겼던 것을 극복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한계가 없어졌다 메콩강에서 배를 타고 캄보디아를 거쳐 다시 배를 타고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태국에서 음력설인 4월 중순에 세계 최대의 물 축제인 쏭크란 축제가 열린다. 불교국가인 태국은 불상을 모셔놓고 물을 뿌리며 묵은 액을 씻어 내고 새해의 복을 빌며 정화하는 의미로 3일 동안 축제를 즐긴다.
쏭크란 축제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와 물놀이를 하며 즐기기 때문에 어머니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축제만큼은 혼자 즐기려 했으나 어머니는 함께 거리로 나와 누구보다 더 축제를 즐기셨다. 당시 38kg의 깡마른 어머니의 너무나 해맑은 표정이 압권이다. 5월 초 어버이날 즈음엔 한국에 있던 누나가 휴가를 얻어 태국에 5일간 합류해서 어머니와 비타민 같은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커리어 우먼인 누나가 여행 동안 거지꼴에 가까워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버스로 말레이시아를 거쳐 동남아의 육로 최남단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100일 만에 동남아시아 육로 정복이 끝났다. 여기서 여행을 끝낼 생각으로 또 어머니와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하게 됐다.
지도를 보시던 어머니는 “싱가포르 아래 섬 들이 많이 있네. 왜 여기는 못가? 여행 금지 국가야? 무슨 나라들이야?”라는 물음을 던지셨다. 마치 장난감 가게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지는 않지만 “이거 무슨 장난감이야? 이거 가지고 놀면 정말 재미있겠다”라고 말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아직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됐고 여행을 시작하며 돈이 떨어질 때까지 여행을 하고자 생각했기에 계속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800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여행을 시작했고 100일간 여행 동안 500만 원 정도 썼다. 하루 경비로 5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숙박비는 2만 원 내외로 저렴했고, 동남아 지역의 식비 또한 시장이나 현지 식당을 이용하면 중국식 볶음밥은 10위안(1,700원), 태국식 파타이 볶음쌀국수는 60바트(2,400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스리랑카 등 섬나라를 여행했고 아시아와 중동의 경계인 스리랑카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게 됐다. 드디어 아시아 대륙을 벗어나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중동지역으로 이슬람 문화권이고 아랍어를 사용한다. 버스로 카이로로 이동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관광하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며 잊지 못할 순간을 쌓아갔다.
4개월이 흘렀다. 이제 100만 원 남짓 남았지만 한국행 비행기 표는 누나에게 부탁하기로 하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동유럽으로 갔다. 체코의 프라하, 아시아와 유럽을 동시에 품은 터키 이스탄불, 몬테네그로 코토르,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등을 돌았다. 동유럽은 물가가 저렴하고 풍경이 너무나 멋진 나라들이 많다. 여행은 매일매일 축제 같은 날 이제 6개월 동안 경비를 다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으로 갈 계획을 세우는데 어머니가 너무 억울하고 간절한 말투로 “조금만 더 가면 그 유명한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가 있는데 내가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니! 이제 내가 이름 좀 아는 나라 여행 좀 해보자”라는 너무나 설득력 있는 말을 하셨다. 매일 블로그에 기록해 놓은 글을 보고 너무나 행복해하시는 엄마를 위해 한국에 있던 누나가 선뜻 많은 돈을 보내줬고 여행은 계속될 수 있었다.
드디어 서유럽에서 어머니의 여행은 정점을 찍었다. 런던, 로마의 콜로세움을 거쳤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서는 춤을 추며 “와! 내가 아는 나라에 왔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유라시아 대륙 가장 서쪽 끝인 포르투갈의 호카곶에서 유라시아 동쪽 끝 한국에서 시작된 300일간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끝냈다. 여행을 마치며 어머니는 “300일은 내 인생의 축제 같은 날이었어”라고 하셨다. 한국에서의 현실, 그러나 여전히 여행은 새로운 도전 12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주변 친지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여행을 만류하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6개월간의 구직 기간은 최악의 시간이었다.
새 직장을 찾아 5월에 입사했다. 만족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한 출판사에서 300일간 여행기를 담은 블로그를 보고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 11개월 만에 2권의 책을 출판했다. 거짓말처럼 1쇄 출판한 책이 3일 만에 완판됐고 15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출간한 책의 인기 덕에 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화보 촬영도 하게 됐다. 뉴스와 예능 등에 출연도 하게 되고 그 파급력으로 해외 출판 에이전시에서 책의 판권을 사갔고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책이 출간됐다. 대만 주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아 5일간 5개 서점을 순회하기도 했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던 생활이 바빠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전업 여행작가라는 직업에 확신이 없어 많이 망설였지만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지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퇴사를 결심했다.
예능 방송에 출연하고 한국관광공사 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토론회에도 참여하게 됐다. 어머니는 유튜브 스타가 되셨고 같이 방송 출연도 하게 됐다. 방송에서 “이제 아들이랑 남미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300일간의 세계여행 2탄의 계기가 됐다.
세계여행 2탄 300일은 미국에서 시작해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 1순위인 페루의 잉카유적지인 공중도시 마추픽추, 시각적으로 가장 황홀함 주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지상낙원 갈라파고스 섬, 아르헨티나의 안데스산맥 페리토 모레노 빙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 이구아수 폭포를 거쳐 남미 대륙의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 마을까지 여행했다.
남극까지 가고 싶다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남극 방향으로 항해하는 유람선을 타고 펭귄이 서식하는 작은 섬들을 돌며 중남미 대륙 종단 여행이 끝났다. 약 600일간 24시간 동안 어머니와 여행하는 동안 평소 들을 수 없었던 많은 대화를 하게 됐고 어머니의 속마음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여행은 매일이 축제 같을 수도 있고 고된 고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새로운 나를 마주했을 때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확실하다.
다음 성남행복아카데미는 12월 12일 저녁 7시 30분 정재찬 한양대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주제로 성남시청 온누리실에서 열린다. 취재 나안근 기자 95nak@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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