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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기사님, 전주약국 가주세요”

산성동의 이정표로 46년을 지켜온 전주약국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2/24 [11:58]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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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님들 중에 산성동 전주약국(약사 송순애) 모르면 간첩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수정구 산성동 언덕 위에 놓인 마을을 방문할 때면 사람들은 ‘전주약국 가주세요’를 말했다. 그렇게 46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주약국은 산성동의 이정표로,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마을을 지켰다.

송순애 약사 나이 25세 때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남편을 따라 성남에 들어왔다. “남편이 전역할 때까지 4~5년만 살다가 가야지 하며 약국 개업과 함께 자리를 잡은 게 어쩌다 보니 46년 세월이 흘렀고, 이곳에서 네 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고, 어느새 나이 일흔이 됐다”며 송순애 약사는 산성동 주민들과 함께 걸어온 고단했던 시절, 훈훈한 정으로 엮어낸 46년 삶을 이야기한다.

가파른 언덕 위 얼기설기 엮어진 단층집 사이로 3층 건물이 우뚝 섰다. 전주약국이다. 그후 산성동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듯 전주약국을 말했고 산성동 내 부동산 정보 또한 ‘전주약국에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등 약국을 기점으로 안내됐다. 이렇게 전주약국은 산성동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됐다.

1975년, 약국을 개업할 당시 산성동(과거 단대동)은 시내와 외떨어진 섬과 같은 곳이었다. 약국 앞 비포장도로엔 시간을 약속할 수 없는 시내버스가 간간이 다녔다. 고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새벽 2시나 돼야 물이 나왔다. 공동수도로는 물이 부족한 사람들은 마을 내 몇 집과 약국에 설치된 수돗물을 사용하기 위해 늦은 밤, 새벽을 따지지 않고 물을 긷고 빨래를 했다. 소란스러움에 잠을 설쳐도 물이 귀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고단하고 팍팍한 일상에 놓인 사람들은 하루의 마무리를 술 한 잔에 의지했고, 약국 앞 사거리의 밤은 언제나 다툼으로 소란스러웠다”며 “그래도 정이 있는 사람들, 약국 운영으로 바쁜 저를 대신해 아이를 봐주고 음식을 나눴다. 남편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위급한 새벽 시간에 손수 리어카를 끌고 와 남편을 병원에 이송해줄 정도로 정이 깊은 사람들을 이웃에 두고 살았다”며 그 훈훈했던 시절을 송 약사는 미소에 담아낸다.

산성동은 서울과 가깝고 지하철 역사가 근접해 있으나 옆으로는 남한산성 자락, 뒤편으로는 단대공원 숲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섬처럼 외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그래선지 다른 곳에 비해 산성동 골목상권은 소박하지만 두루두루 잘 갖춰져 있다. 대형 상권이 축소된 모습이다. 병·의원 4곳, 치과 3곳, 한의원, 약국 등 의료시설에서부터 금은보석, 이·미용, 한복, 이불, 제화점, 의류, 철물, 고깃집, 각종 음식점 등 멀리 가지 않아도 급한 건 지역 내에서 해결 가능하게끔 골고루 갖춰져 있다.

재개발 사업을 목표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 산성동(일부 지역 제외)의 현재 모습은 머지않아 삶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산성동의 이정표 전주약국,

“전주약국으로 가주세요”란 말은 미래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소환될 것이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