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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섬유·봉제 산업을 주름잡았다

‘ 대동정밀미싱’서 듣는 80년대 종합시장 맞은편 상권 풍경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4/06 [14:0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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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터를 잡을 당시를 떠올리자니 너무 먼 세월의 흔적이라 어렴풋하니 기억이 흐리다.”

김동옥(63) 대동정밀미싱 대표가 종합시장 맞은편 상권(중앙동)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넓은 공간인데도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스물여섯 살 총각의 성남살이가 시작됐다. 약 38년 전 일이다.

1983년, 당시 이곳 중앙동 상권은 성남의 으뜸 번화가였다. 남한산성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단대천(丹垈川)을 따라 흐르고, 개천 위 뚝방길 위를 사람들은 사람에 밀려 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중심상권이었다. 하루의 해가 뉘엿뉘엿할 때면 길 위로는 포장마차가 하나둘 들어찼고, 사람들은 포장마차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갈무리했다. 김동옥 대표가 들려주는 38년 전 이 거리의 풍경이다.
 
우리은행 사거리(구 한일은행)부터 성호시장 사거리를 잇는 거리엔 유독 미싱(재봉틀) 가게가 많았다. ‘대동정밀미싱’ 개업 이후 약 두 정거장거리엔 15여 곳 미싱 가게가 줄지어 들어섰다.

원도심 주민이라면 ‘이곳엔 왜 미싱(공업용·가정용) 가게가 많은 걸까?’란 궁금증을 한 번쯤은가져봤을 것이다.
 
“가죽, 봉제완구, 의류를 제작하는 섬유산업이 성황을 누리던 때였습니다. 당시 성남엔 소예산업, 영원무역, 풍국산업 등 가죽이나 섬유를 원료로 하는 기업들이 많았어요. 소규모 임가공 업체는 일반 주택가 곳곳에 봉제 공장 또는 하청, 부업이란 이름으로 분포돼 있었어요. 제1공단 이전과 IMF 외환위기, 인건비 상승, 섬유산업 해외진출로 이어지기 전까지 호황을….” 김  대표의 말끝이 흐려진다.
 
‘대동정밀미싱’은 현재 이 거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먼 옛날로 돌아가면 쌀 세 가마니값을 치러야 해갈 수 있는 혼수품 제1호 재봉틀, 한때는 섬유산업을 주름잡던 미싱을 취급하던 가게의 자취가 사라져간다.
 
이 거리의 모습 또한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예정이다. 상인들은 이주를 계획 중이다. 대동미싱을 비롯해 경기체육사, 신용문구,진선미교복 등이 가진 40년, 50년 전통은 상권과함께 사라진다. 과거의 잔재로 남아 있는 수많은 숙박시설 또한 과거로 묻힌다.
 
80년대 상권 앞을 흐르던 단대천의 흔적을 왕복 8차선 도로와 지하철 8호선이 지워갔듯이, 지금의 낯익은 풍경이 사라진 자리엔 어느덧 주상복합빌딩숲이 주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