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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송시열의 형제 화목하는 도리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4/06 [14:3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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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이 손자며느리에게 보낸 한글 편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 비전성남

화목하게 지내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부모에게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정치계와 사상계의 거목인 송시열(宋時烈)은 조선 예학의 대가답게 출가하는 맏딸에게 평생 제 몸을 처신하고 교훈이 될 본보기로 삼도록 한글로 『계녀서(戒女書)』라는 글을 써준다. 송시열은 이 책의 ‘형제 화목하는 도리’에서 형제 간에 지켜야 할 도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형제는 한 부모에게 혈기를 나누어서 같은 젖을 먹고, 한 집에서 자라나 옷도 같이 입고, 밥도 같이 먹고, 놀기도 한시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고, 병이 들면 근심하고, 배고파하거나 추워하면 민망하게 여기어 제가 당한 것과 다르지 않게 하다가, 각각 부부(夫婦)를 차려서 분가한 후에는 제 자식의 말도 듣고 노비의 말도 듣고 자연히 불공지설(不恭之說)이 있어 처음 그렇게 사랑하던 마음이 점점 감소하여 심한 사람은 미워하고 (서로) 헐뜯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 참혹한 일이 아니겠는가. 노비와 전답을 가지고 다투어 연(緣)을 끊은 이가 많고 욕심이 갈수록 길고 지정(至情)을 잊는 자가 많으니 부디 삼가라. <중략>”
- 『계녀서(戒女書)』, ‘형제 화목하는 도리’

 
송시열이 살던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한 부모에게 혈기를 나누어 가진 의좋은 형제가 성인이 돼 분가를 하고 나서 노비와 전답 등의 경제적인 문제로 다투고 연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나 보다. 송시열은 “노비와전답은 없다가도 있는 것이지만, 형제는 한번 잃으면 다시는 얻지 못하는 것이니 싸우고 불화할 마음이 어찌 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정치가로서는 냉정하고 근엄해 한 치의 허점도 타인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송시열의 형제애는 어떠했을까. 송시열은 다섯 형제 중 셋째였다.

송시열의 다섯 형제는 평생 우애를 지키며 각별한 형제애를 보여줬다. 특히 맏형 송시희에 대해 송시열이 보여준 형제애는 한글 편지에 절절히 남아있다. 이 편지는 1671년 5월 10일 송시열의 나이 64세 되던 해에 손자며느리 밀양박씨에게 보낸 것이다.

송시희는 26세의 나이에 후사 없이 사망했다. 송시열은 살아생전에도 송시희 내외의 제사를 늘 걱정하고 챙겼는데 그의 나이 64세가 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자 형 내외의 제사를 자신의 손자며느리밀양박씨에게 맡기기 위해 한글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자신이 죽은 후에 부디 한 칸 사당을 짓고 사당 오른편에 형님 내외의 신주를 뫼시면 정녕 서로의지해 외롭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밀양박씨 대 이후에는 이 신주를 묘 곁에 묻고 한 해에 한 번씩 묘제만 지내도록 하되 오래도록 폐하지 말 것을 자손들에게 분부하라는 당부를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제사를 위해 노비와 전지를 따로 정해 놓고 자손 대대로 맏이가 맡도록 하라는 당부를 적었다.

이 편지는 단순한 한글 편지가 아니라 송시열이 맏손자며느리에게 봉사조(奉祀條)를 주는 분재기 성격의 글이다. 이 편지에는 대가 끊긴 형을 살뜰히 보살피는 송시열의 마음과 세세한 집안의 살림살이까지 꼼꼼히 챙기는 가장으로서의 송시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