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부가 23년간(1993~2015년) 써온 가계부와 장롱 깊숙이 오랫동안 보관했던 1971년에 광주대단지 분양을 위해 제작한 ‘광주 대단지 건설 약도’가 성남 도시역사 관련 유물로 매입돼 화제다. “건설약도는 위례로 이사하면서 짐 정리를 하다가 찾았어요. 구하기 어려운 지도라고 화제가 됐는데, 그 과정에서 23년간 써온 제 가계부도 유물로 선정이 됐습니다.” 23년간 가계부를 써온 이은순(74) 씨는 “원래 기록을 좋아했다”면서 “500원이면 친구랑 둘이서 100원짜리 커피 마시고 120원짜리 짜장면까지 먹었던 시절부터 수입과 지출을 작은 공책에 적었는데, 본격적으로 가계부를 쓴 것은 결혼 후 중앙동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면서부터예요”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 6남매를 키워야 했던 친정엄마의 입출금을 메모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에만 쓴다’는 것이 몸에 뱄다는 이은순 씨. “가계부엔 가족의 소소한 일상과 개인사가 기록돼 있지만 박물관에 성남의 유물로 보관해 준다니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낫잖아요? 팔았으니 돈을 받았는데, 오히려 내가 보관료를 줘야 되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이 씨는 가계부를 적으면 수입과 지출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통계를 내보면, 필요 없는 지출이 뭐였는지, 그 안에 가정경제를 잘 꾸려갈 수 있는 정보가 보인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이 그러더라고요. ‘장사를 하니 늘 현금이 들어오는데 어째서 돈에 쪼달리지?’ 그래서 가계부를 보여줬지요. 남편이 체면유지비로 여기저기 찬조한 돈이 만만치 않은 것을 보고는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한다. 필요한 것에만 쓰고, 그것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쓴다는 그는 늘 짠순이로 살았지만, 정작 집안의 대소사에는 큰손으로 쓸데는 쓰며 살고 있다고 했다. “흉보면서 닮는다더니 우리 며느리도 달라졌더라고요. 시집와서 처음엔 뭐든 신형 좋은 것, 편리한 것으로 바꾸라고 하더니 이제는 누가 뭘 권해도 ‘필요한 것에만 쓴다’고 말하더라고요. 내심 흐뭇했네요.” 열심히 산 덕에 2년 후면 입주할 새집도 있고, 상가도 있고, 노후대책으로 완납한 보험도 있다는 그는 “속으로는 늘 당당해서 내가 나를 칭찬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동 재개발로 가게를 접고 위례로 오면서 장사할 때보다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성남시 분당시니어클럽 회원으로, 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일자리 청춘단 회원으로 사진촬영과 동영상을 제작하며 활발히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가계부 쓰는 거요? 그것은 제가 살아 있는 날까지 계속될 겁니다.”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으며 툭툭 던지는 그의 말이, 소소한 일상의 얘기로 안부를 전하듯 편안한 만남이었다. 취재 정경숙 기자 chung0901@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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