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없이 태평스럽게 사는 동네 태평동은.. ‘근심 없이 태평스럽게 잘 사는 지역’이라는 태평동(太平洞)은 조선시대엔 광주군 세촌면 탄리와 독정리였으나 1914년 탄리로 통합, 1973년 태평동이라 했다. 1975년 10월, 태평동을 1동과 2동으로 나눴고 1980년 태평1동을 1동과 3동으로 나눴으며 1989년 수정구에 편입, 1990년 1월에 태평2동을 2동과4동으로 나눴다. 언제부턴가 확실하지 않지만 세금으로 받은 숯을 보관하는 숯 창고가 있어서 숯골(탄리)로 불렸다는 태평동엔 아프고 흥미로운 역사이야기가 많다.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에겐 아름다운 세 명의 공주가 있었다. 둘째인 명혜 공주가 천연두를 앓다가 겨우 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현종14년 4월 27일). 슬픔이 채 가시기 전, 첫째 명선 공주도 그해 8월 2일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13세였던 공주는 배필이 정해진 상태였다. 슬픔에 젖은 현종과 명성왕후는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광명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1호·사진)을 중창(重創)하고 절 이름을 봉국사라 명했는데, 바로 태평2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상좌인 춘성 스님이 말년에 계셨던 천년고찰이다. 태평동의 수많은 길 중 조선시대 두 대군의 이름을 딴 길이있다. 평원 길과 제안 길이다. 평원대군(1427-1445)은 제4대 임금 세종과 소헌왕후의 일곱째 아들로 19세 때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제안대군(1466-1525)은 제8대 임금 예종의 둘째아들이다. 형인 인성대군이 죽었기 때문에 예종이 죽자 왕이 될 자격을 갖췄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할머니 정희왕후가 반대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 후 정치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정희왕후는 제안대군을 평원대군의 봉사손(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으로 입양시켰다. 악기 연주를 잘 하고 노래를 즐겼던 제안대군은 어머니 안순왕후의 죽음 후 여색을 멀리했고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다 예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두 대군의 묘는 정확한 위치 추적은 어려우나 태평3동 일대에 있었고 현재 태평3동 일대는 평원 길과 제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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